절망인 이유

by 법칙전달자

절망인 이유


인간은 태어나서 교육을 받으면서 어느 시점에 자의식이라는 것이 형성됩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많은 요소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것이죠. 그 모든 요소들은 0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나 의, 사랑으로 교육받아 형성된 의식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고라는 것은 원칙, 확립된 진리를 바탕으로 해야 하죠. 그런데 그런 것이 없으므로 인간의 생각이 표현된 글이나 말에는 가정성, 추측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만 있어도 거짓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대부분 혹은 주된 부분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이성의 산물이 거짓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절대적으로 절망적이죠.


지성의 산물이라는 학술논문이라는 것도 그러합니다. ‘종의 기원’을 이루는 대부분의 문장들도 가정성, 추측성들이죠.


극히 일부의 가설들은 그것이 입증되어 원리나 법칙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성의 영역에 있는 것들은 그렇게 될 확률이 있습니다.


그렇게 발견된 것들을 적용하여 실용적인 기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정이나 추측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설계도의 어떤 부분에도 가정이나 추측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측면은 인간은 모든 것이 자신의 의식 즉 마음 안에 있다고 착각합니다. 신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그 의식 안에 두고서 임의로 판단하죠. 그래서 무신론, 유신론, 범신론, 이신론과 같은 철학적 주장들을 내어 놓죠. 물론 많은 비중이 가정성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죠.


그런데 인간의 의식이 미치는 범위는 매우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도 어둡습니다. 그리고 의식의 전개방식이 진리에 기초한 정확한 추리가 전혀 아닙니다. 의식작용의 결과는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요한1서 3:20)


게다가 사랑이라는 원리에 따라 추리하는 방법을 전혀 모릅니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1서 4:7)


창조주와 개인적 관계가 없는 사람은 사랑을 지니기가 불가능합니다. 이 인간사회에 사랑이 전무한 이유입니다.


확립된 진리에 근거해서 사랑의 원리에 따라 생각을 발전시키고 의식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점에 대한 칠흑 같은 무지로 세상과 각 사람의 상태가 절대적인 절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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