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성과 불량품
노아의 홍수가 사실이고 그때 홍수로 죽은 사람이 불량하였다면 불량률은 99.9% 이상이 되죠. 홍수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그와 같은 멸망이 있다고 성서에 예언되어 있죠. 아마겟돈 때입니다. 비유적으로 방주에 탄 사람이 아닌 경우 스스로 택한 죽음을 겪게 되죠.
어떤 공장의 생산제품의 불량률이 그 정도 된다고 할 때 그 공장장의 책임은 막중해지죠. 고의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불량률이죠. 제작 조립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인간의 불량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창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창조주는 결코 완전하고는 거리가 먼 것입니까?
하자가 전혀 없는 완전한 자동차가 출고되었다고 하죠. 어느 정도의 시점이 지난 상태에서의 자동차의 상태는 자동차 생산자하고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 사용자와 전적으로 관련이 있죠. 인간은 어떤 면에서 이중적입니다. 자동차이면서도 운전자 즉 관리자이죠. 태어나서 상당 기간은 부모의 관리를 받긴 하는데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불완전성을 타고났다 해도 자유만큼은 온전히 받아 나오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타고난 결함도 인간의 선택에 따라 회복할 수 있는 마련이 있으니까요.
창조주는 인간의 높은 불량비율에 대해 자신의 완전성에 돌아올 비난이 두려워 인간의 의식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식의 상태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되도록 애초에 만들어졌죠. 그것을 조정한다면 오히려 창조주가 스스로 만든 법칙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법칙의 절대성이 무너지는 것이죠.
결론은 인간의 불량성은 창조의 완전성과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 혹은 창조의 법칙이란 “의식 있는 존재의 행동의 결과를 관장하는 우주적 영적 법칙”이어서 결과만 관장하는 것이죠. 고침 불능의 불량품일 경우 폐기되는 결과만이 있을 뿐입니다. 자동차 제작사는 폐차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습니다.
인간이나 사회 혹은 자연에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모든 현상은 결코 창조의 불완전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이 미시 및 거시세계에서 지금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우주 전체의 질량이 지금보다 모래알 하나만큼 적거나 크면 우주가 지금처럼 운행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인간을 위해 모든 면에서 매우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다고 하니까요. 그것이 시초부터 조금도 조정되거나 변개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죠.
반면 인간이 한계를 인식하고 자유의지를 겸허하게 사용할 때는 어떤 불량성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창조의 법에 관한 지식에 접했을 때 거부하지 않고 조사해보는 것이 그렇게 하는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