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서 새로운 것은 없다
전도서에는 창조에 관한 여러 법칙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몇 십년전의 기사인데 하와이의 한 교수가 전도서를 읽고 오늘 아침 조간 신문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은 진리의 유일성과 영원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새로운 것이 없다니요?
우주는 수리적으로 매우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예를 들면 전체 우주의 질량은 불변인데 만약 모래알 하나만큼 질량이 더해지거나 덜해지면 완전히 다른 우주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인간은 잘량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내거나 없앨 수 없죠. 그런 면에서 인간은 조금이라도 새롭게 할 수 없죠. 만물을 운영하기 위한 조건인 법칙이나 성질에 대해서도 그렇죠. 그러한 것들의 수는 무한할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거나 없애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죠. 그런 면에서 우주는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만들어진 것은 영원하고 그 시종 곧 궁극의 본질을 인간이 알 수 없다는 점도 알려줍니다. 창조의 공덕은 완전전하다는 표현은 신명기에 있죠. 한편 전도서에는 인간들이 한 일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고 인간으로서는 고칠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나 정책들 그리고 철학적으로 고안된 소위 이념들을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허점이 너무 많아 계속 개정해야 하죠. 그러면서도 결코 완전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철학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정반합이라는 원칙이 있다고 하는데 그 본질은 어떤 거짓주장이 생겨나고 그에 대립되는 다른 거짓이 등장하고 결과로서 새로운 거짓이 생긴다는 것이죠. 인간이 사고한다는 것은 편견의 재배치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거리들로 가득찬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특성을 가진 생각으로 즉 거짓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죠. 인간과 인간세상이 이렇게 된데는 창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인간에게는 자유가 주어져 있는 데 이는 어떤 다른 원칙보다 우선하며 이 역시 법칙입니다. 저처럼 이 자유를 사용하여 창조를 인식하고 그 법칙에 순종하며 살기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유뮬론이나 진화론 그리고 소위 '''주의 등등 거짓임이 입증된 철학이나 천당지옥 등의 거짓 교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죠. 99% 이상의 수적으로 절대다수의 인간들은 후자를 선택하고 있죠. 그러나 그렇다는 사실은 인간 창조가 불완전하다거나 불안정한 것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의지의 절대성을 의미하죠. 머리수는 그점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들은 온갖 문제거리들이 있고 서로 싸우고 사건이 생기고 병들고 늙고 죽는 것이 마치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당연히 그러한 것처럼 세뇌되어 세상과 사람은 원래 그러한 것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며 살다가 희망없이 생을 마치게 됩니다. 자유의지로 확고하게 그런 선택을 하기때문에 선택한 바에 따른 결과가 법칙에 따라 임하는 것 뿐입니다.
한편 창세기에는 공동창조의 개념이 언급되죠. 인간은 창의력을 사용하여 전지구를 낙원으로 개척하는 임무가 주여졌죠. 인간에게 재량권이 주어진 영역에 대해서는 창조주가 전혀 개입하거나 조정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하게 만들어진 법칙에 따라 그렇게 운영되는 것이고 인간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무리 끔찍한 비극을 초래해도 그렇습니다. 이는 인과법칙이 적용되는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해보면 법칙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지구가 낙원화되는 것은 더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죠.
물질계와 식물계, 동물계 그리고 인간계는 각각 적용되는 법칙이 다르다고 하는 연구도 있는데 인간계를 지배하는 법칙이 다름은 확실합니다. 자유의 법칙이 그 하나죠. 인간중심원리라는 것도 있습니다.
왜 자유의지를 사용히여 이 좋은 쪽을 선택하지 않는 것일까요? 자유의 선택은 절대적으로 보장 받는데도 불구하고요. 유일한 진리를 찾아 정말 그러한지 꼭 확인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