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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태어난

by 법칙전달자

죽기 위해 태어난


"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처럼" 이라는 표현은 성서에 두 번 나옵니다.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도달되는 최종 결과를 목적이라 할 때 죽음이 삶의 종착역이라면 죽으려고 사는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이는 대우주의 대오류로 느껴지기 때문에 죽는데 왜 사나?라는 의문도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의문도 산자에게나 가능하죠.


짐승인 경우 때 이른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려 하기는 하지만 죽는 순간에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죽은 새끼를 먹이로 여기는 동물들도 많죠. 인간은 죽음에 대해 허무, 슬픔, 두려움을 느끼죠. 이점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 동물하고는 다릅니다. 근래에는 진화론의 영향으로 인간을 짐승과 같은 선상에 놓고 죽음은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견해들이 있지만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도 다른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증거들이 있는 것이죠.


지성이라는 단어는 몇 가지 다른 의미들이 있는데 좌우뇌가 균형 잡힌 의식 상태라는 의미가 있고 논리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 오성 즉 학문을 할 수 있는 사고기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후자인 경우 이성과는 뚜렷이 구별되죠. 이 지성과 구별되는 이성은 영적 사고를 하는 기능을 의미합니다. 학문을 통해서는 할 수 없는 그런 영역에 관한 것이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신에 관한 것, 도덕의 절대적인 표준에 관한 것 등등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기능을 의미하죠. 그런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사고 기능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인간이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은 법칙으로 증명되어 있죠.


그런 것들은 창조주의 메시지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 대한 진리의 지식 없이 사는 사람들은 이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관념뿐입니다. 영적인 언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하죠. 그저 살아 있는 동안 편하고 부유하게, 쾌락적으로 사는 것이 목표이죠.


결국은 다른 짐승들처럼 그렇게 죽게 될 뿐이죠.


좌우뇌가 균형 잡힌 상태의 의식을 지성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지성인은 거의 없습니다. 만물은 마술처럼 짠 하면서 갑자기 생겨났고 맹목적인 진화과정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겨났으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세상에서 그런 면으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의식상태를 지닌 사람은 좌뇌가 편중되게 발달한 사람이며 뇌를 스캔해 보면 검고 움푹 파인 부분 즉 병든 부분이 검색된다고 합니다. 선과 악은 인간이 임의적으로 정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이에 속합니다. 뇌가 생물학적으로도 병들어 있는 것이죠. 스티븐 호킹의 경우도 지능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결코 지성인이 아니라고 하죠.


다른 사람이 하라는 대로 자신의 인생을 내맡기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뇌가 편중되게 발달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역시 뇌 상태가 정상적이 아닌 것이죠. 이런 면에서 지성적이 아닌 사람들 역시 이성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성 없는 짐승처럼 살 것입니까? 주어진 이성을 정상적으로 사용하여 사람이 될 것입니까? 죽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살이야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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