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을 바꿔서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상당수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념에 익숙할 것이고 그 개념들이 공정하고 원활하게 실행되어 복지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랄 것입니다.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제도 가운데 상대적으로 누리는 자유와 부를 다행스럽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슬람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보면 어떠할까요? 이슬람은 7세기경 마호메트에 의해 아라비아에서 창설된 지 급속히 세를 확장해 왔는데 그 선명성, 순수성, 진실성 등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상당수의 기독교인이나 유대교인들도 개종을 하면서 그렇게 되어왔다고 합니다. 물론 세력이 커지면 권력 다툼 등으로 불미스러운 현상이 생기기 마련이죠. 지금도 10억대의 인구가 이슬람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보기에 자본주의 진영은 탐욕스럽고 부도덕하고 부패가 심하고 빈부격차가 크고 범죄율과 자살률이 높은 나라로 인식되어 있죠.
이는 공산진영에 속한 사람들의 시각도 비슷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행복지수에 대한 통계는 방글라데시 같은 가난한 이슬람국에서 높게 나오죠. 한국이나 일본 특히 복지가 가장 잘 되어 있다는 스웨덴 같은 나라가 매우 저조한 편이죠. 자실률도 높고요. 자녀를 프랑스에 보내면 사회주의자가 되고 모스크바에 보내면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서로 간에 큰 부정적인 측면들이 있는 것이죠.
다른 지역보다 이슬람인들이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죠, 그들의 사상이나 생활에 깊이 뿌리 박혀 있죠. 기독교 지역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죠. 그들은 스스로를 더 의롭고 행복한 입장에 있다고 볼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알라는 위대하다고 하면서 적대세력에 대한 살인은 당연하고 예사롭게 생각합니다. 자폭테러도 자주 일어나죠.
다른 측면으로 공산사회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코란을 바탕으로 해서가 아니라 여러 이상적인 사회주의 이론에 기초하죠. 서로 동지애, 동무의식을 같고 인간은 평등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하며 나름대로 지상낙원을 이룩해보고자 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죠. 최대의 적은 자본주의의며 부르주아 의식이죠. 부르주아들은 하루라도 일찍 죽어주는 것이 인류의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죠. 살인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폴포트, 스탈린, 모택동 등등. 죽여주는 것이 죽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에게서 투덜거림을 없애주는 것이니까요. 또 죽여줌으로써 평온해지고 모든 관련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되기도 한다는 것이죠.
모택동도 그의 지지자들에게 인민의 적을 처단하라고 한 나머지 수천만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죠. 한 소수민족에는 식인 습관이 있었는데 그 지역에서는 10만 정도를 죽이고 천명정도를 잡아먹었다고 하죠. 한 기자가 회견을 하자 식인을 한 한 사람은 나는 모 주석에 명에 따라 지주를 죽이고 그의 통통한 아들을 잡아먹은 것인데 그게 뭐 어떠냐고 했답니다. 모택동에게 보고 되었는데 그는 분개하면서 이건 아니잖아? 인민의 적 처단하는 것 이제 그만해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을 쉽게 죽이는 사상은 이슬람이나 공산주의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죠. 히틀러 등 소위 극우파 들도 비숫하게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각 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 지역에 따른 사상 교육을 받아 상대진영의 사람들을 불쌍이 보고 해방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통치자들의 전쟁을 당연히 여기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념이 다르거나 종교나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죽이는 일이 역사상 너무 많이 일어났죠 한편으로는 이념이 다르지 않는 한 웬만한 범죄로도 사형까지 시키지는 않죠.
한국에서는 좌우의 사상이 머릿수로 보면 거의 비슷하게 세력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서에는 세상이 크게 셋의 세력권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각각 10억대의 사람들이 그에 속해 있죠. 모두가 창조주의 관점에서는 사법적으로 멸망의 선고가 내려져 있죠. 사형수들은 사법적으로 사형이 확정되었다는 것이 중요하죠. 언제 사형이 집행되느냐 보다요. 인간은 창조주만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성서의 원칙은 사람이 사람을 통치하면 해롭다는 것입니다.
창조주만이 끝까지 악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형을 집행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는 120년 전에 예고하고 60년간 전파되게 한 후에 그렇게 했죠. 홍수로는 아니지만 예수는 그런 일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이루어질 것임을 예언했죠. 상징적 방주에 탄 사람들만 멸망을 피할 수 있죠. 현재 1,000만 정도가 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