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밖에
각기 나름의 소신, 인생관을 가지고 삶을 삽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고 타인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없으므로 각자 다른 사람의 방식, 인생관을 존중해 주며 그런 것으로 논쟁하려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잔리대로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은 어색하죠. 진리는 유일한데 인생관은 거의 개인마다 다르기 때뮨입니다. 인간이 서로 그럴 수 밖에 없음은 이해가 갑니다.
무슨 밀교의 신도들이나 그들이 세뇌받은 대로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은 영화의 한 장면에서나 가끔 볼 수 있죠. 동일한 극단주의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가끔 집단자살 뉴스 같은 것도 있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건 씁쓰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한평생 살다 죽는 것이고 이점에 있어 인간은 어쩔 수 없으니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이죠. 정치사상이나 종교적 교리 역시 믿을 수 없으므로 관련해서 각기 니름의 소신을 가지고 있을 뿐 그런 문제에 대해 논쟁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처럼 되어 았습니다. 서로 관계만 나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저 나름대로 능력대로 열심히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고 할 수 있는 한 삶을 즐기다 편안히 죽는 것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으로 보입니다. 인생이 뭐 별거 있어?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어둠의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물론 창조주가 있다면 인간을 그렇게 살도록 만들지 않았겠죠. 그런 식으로 사는 인간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전하라고 위임한 사람들이 선지자들이죠. 그중에 한 사람인 예레미야 있습니다. 그는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확신하였으므로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호응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극렬한 반대를 받았죠. 그래서 더 이상 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뼈가 타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힘이며 진리룰 알게 된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죠. 고대의 선지자들 뿐 아니라 예수나 그의 제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전해야 된다는 강한 사명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비슷한 이유로 교육의 의무라는 것이 생깁니다. 국민들이 학문적 진리를 반드시 알아야 되겠기에 교육을 강제하는 측면이 있죠. 국민 개개인의 삶의 복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는 정치인이나 국가가 가지고 있지 않죠. 그러므로 그런 것은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답을 찾건 철학에서 답을 찾건 존중해 줄 테니까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이 성서에 있는 것입니다.
저도 같은 이유로 그 사상들을 전달하는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