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가 의미하는 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 있는데 칸트에 의해서 삶의 본질에 대해서 인간의 이성이 알 수 없다는 점이 밝혀진 이래 즉 불가지법칙이 확립된 이래 이를 아는 사람은 더 이상 그 본질을 알기 위해 과거와 같은 철학적 종교적 사유를 하지 않게 되었죠. 인간은 사유할 필요가 없다는 임어당의 말처럼요. 아직까지도 철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모르고 지구의 전체 모양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런 상식을 아직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한 번 언급해 봅니다.
본질적인 것은 알 수 없어도 현재 살아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인지가 되죠. 즉 실존 혹은 현존재는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정신적 에너지를 본질을 탐구하는데 헛되이 소모하지 말고 현재의 삶을 더 행복하고 보람 있고 풍요롭게 사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경제 정치적 이슈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죠.
설령 이와 같은 상식이 없을지라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실존주의적입니다. 세상의 풍조가 그렇다 보니 그런 삶을 따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본질은 인간이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지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매우 쉽게 알 수 있죠. 철학적 방식이 아니라 논리적 방법에 따라서요. 고의적으로 부인만 하지 않는다면요.
의식에 관한 법칙들이 그 본질입니다. 대부분이 고의로 무시하는 것이죠.
본질은 영원히 실존에 앞섭니다. 실존이 그것에서 나왔기 때문이죠. 그래야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한계상황, 극한 상황, 절망의 다른 표현들에 불괴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