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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염원

by 법칙전달자

통일이 염원


단어에 염(념)자가 들어가면 깊고 강하다는 의미가 더해진디고 합니다. 믿음을 신념이라고 한다든지 생각을 상념, 묵상을 묵념, 사상을 이념, 감정을 정념 그 밖에도 여러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소원을 염원이라고 하면 그러하죠.


한국사람이 통일을 염원이라고 할 때 이는 한반도의 통일을 의미하죠. 사실 분열이 옳지도 못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낭비적이기도 하다는 것은 상식적이지만 그걸 그렇게 내색하지는 않는데 그 부조리한 현상이 거의 변화 불가능한 현실이기 때문이죠. 그런 점이 부각되어 정치인들이나 통치자가 비난의 시선을 받아 좋을 리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라도 무모하게 분열을 깨트리고 통합의 이상을 이루려고 시도한 적은 역사에 많죠. 현대에도 독일이 유렵을, 일본이 동아시아를 통합하려 했죠. 김일성은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죠. 와중에 엄청난 희생이 따르더라도 꼭 이루고 싶은 것이 통일입니다. 조선에 대한 통일은 일시적으로 성공해서 내선일체의 개념이 생기기도 했죠. 중국역사를 보더러도 분열과 통일이 반복되었죠. 지금도 어떻게든 대만과의 통일을 이루려고 하고 있죠. 푸틴도 엤소련의 통합을 갈망하여 무모한 전쟁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어떻게든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야심 있는 통치자들의 염원이자 갈망이죠. 나라마다 그것 때문에 무력을 강화한다고 할 수 있죠. 마오쩌뚱은 성공했고 김일성을 실패했죠.


사실 인간이 정말로 막강한 능력과 선한 의지가 있다면 통일은 정당할 것입니다. 통일전쟁을 할 때는 재삼재사 그런 점을 확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역량을 인간이 갖출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판을 하고 착오를 일으키는 것이죠. 아무리 결심을 굳게 하고 온 정성을 다해 신에게 빌어도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한계도 있죠. 제갈량에게 그럴만한 역량과 지혜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50대 중반에 죽고 말았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성서가 핵심적으로 다룬 주제가 바로 통일이라는 것입니다. 통일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청사진이 그려져 있죠.


예수가 보여준 기적들은 자신의 통치기간에 질병과 식량문제 심지어 죽는 일마저 없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요. 나중에 예수와 같은 기적은 그의 제자들도 헹했죠. 그의 제자들도 공동통치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이 묘사한 이상적인 덕과 능력을 지닌 통치자로서 손색이 없죠. 인간들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통치자가 일찍 죽는 것을 애석하게 여기죠. 제갈량이 통일의 끔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죽은 것에 대해 매우 애석하게 여기는 독자들이 많죠.


그리고 세속 역사에 보면 소위 성군이라 일컫는 통치자가 그리 많지 않지만 권좌를 세습한 아들이 그보다 못한 경우가 훨씬 많죠. 그러니 현재로서는 아무리 뛰어난 성군이라 할지라도 그 통치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태평성대를 만드는 꿈을 이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믿을만한 통치자가 세대가 바뀌지 않고 충분한 기간 곧 1,000년간을 통치하죠. 실패한 인간 통치를 종식시키고 1000년간의 통치가 시작되는 때가 바로 우리 시대이죠.


그래서 인간의 염원인 통일이 진정으로 그리고 영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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