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지혜와 지적 지혜
분기점은 1914년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차 대전이 일어난 해인데 역사의 기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시작한 해이죠. 양심이나 도덕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죠. 산다는 희망이 있어야 도덕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도덕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죠. 오늘날은 다 그렇게 삽니다.
부도덕하게 여겼던 것들이 공공연히 여러 면에서 보편화되어 있죠. 크게는 경제와 관련된 측면, 신체와 관련된 측면이 있죠.
바둑을 두면서 이기는 수, 상대보다 집을 많이 짓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은 지적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기 바둑을 두는 것을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 도덕적 지혜이죠. 물론 매사에 도덕적 지혜가 앞섭니다. 지적인 노력은 그것이 도덕적이라는 전제하에서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동기상으로 불건전한 즉 틀림없이 부도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카지노, 복권 등이 공식화되어 있는데 어떤 지역에서는 성매매가 공인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잭팟이 터지는 것과 같은 짜릿한 쾌감추구를 억제하여 불평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 면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이득이 되기만 하면 그것이 건전하고 떳떳하고 도덕적인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죠. 도덕적 비난을 개의치 않을 뿐 이니라 사법적 처벌의 위험도 감수하죠. 오늘날 그런 면으로 귀감이 되어야 할 정치인들이 사실상 가장 깊숙이 그런 경제적 부도덕에 연루되어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런 면으로 온전히 깨끗한 최고 통치자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것은 크게 폭력과 성이 있죠. 사실 비아냥 거리는 정도도 해서는 안되는데 언어폭력에 해당되는 욕설은 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죠. 첫 모임에서 누군가가 구성지게 욕설을 늘어놓으면 사람들에게 오히려 신뢰감과 친밀감을 얻는다고 하는 정도이죠. 욕은 문화라고 하고 절친에 대해서는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언어폭력과 관련된 부도덕성은 현대인간 영혼에 뿌리 깊게 배어 있죠. 유명정치인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정도의 끔찍한 욕설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풍토이죠.
폭력이 숭고한 희생으로 미화되는 조직이 있죠. 바로 군대이죠. 신속하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영웅이 되죠. 영화의 주인공이 그런 사람들이죠. 이미 폭력은 게임, 영화나 드라마에서 갈수록 자극적이 되면서 보편하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언어폭력이나 신체폭행, 살인 등이 없는 그런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까? 단순히 부도덕하다는 차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정도가 오래전부터 만연되어 있죠. 과학자들은 효과적으로 대량 살상하는 무기를 개발하는데 머리를 쓰고 있죠. 도덕적 지혜가 전혀 없는 것이죠.
성이 해방되었다고 한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관련된 구시대의 도덕률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가추장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서로 좋기만 하고 해로운 것은 없는데 왜 그것을 금하느냐는 것이죠. 쾌락이야말로 인생의 목표가 아니냐고 하는 것이죠. 예전에 부도덕하게 여겼던 것에 대해 이건 부도덕한 일이야 생각도 해서는 안되지 하고 올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까? 그저 짜릿한 경험, 설레는 흥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만 공적으로는 이상의 모든 것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경제적 혹은 성적 비리가 드러나서 자살하거나 사법부를 들랑거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죠.
오늘날 사람들은 부도덕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죠. 자신은 능력이 있어 그런 행위를 하는데 너도 한번 해보라는 식이죠.
사람들이 과거보다 지능이 높아진 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도 등장하고 머리 쓰는 일은 거의 모든 면에서 과거보다 수준이 높아지고 있죠. 사기가 점점도 더 고도화되고 첨단화되고 있죠. 사람을 죽이는 과학적인 기술도요.
그런데 도덕적 지혜는 없습니다. 도덕이 지보다 앞선다는 절대적인 법칙이 무시되고 있는 세상이죠. 세상이 곧 멸망되는 당위성을 드러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