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신념
부정적인 감정이 해롭기 때문에 그에 지배되지 않기 위한 명상 등 여러 관련 수련방법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모두 그렇게 느끼도록 창조주가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인간은 '끼추'라는 감정은 갖지 않습니다. 그런 감정은 느끼도록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죠. 인간의 감정은 인간 영혼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기도 하죠. 의식의 삼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감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데 부정적 감정이 문제인 것이죠. 행복 곧 삶과 반대이기도 하고 죽음의 원인이기도 하죠.
감정을 나타내는 어휘는 한정되어 있지만 감정의 종류는 무한하죠. 현재는 어떤 언어로도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죠. 감정이 굳어지면 그 사람의 정서가 되어 인격의 한 단편이 되죠.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도 문제인데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도 문제이죠. 삭막한 가슴, 피폐된 영혼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죠. 감정기능도 영적 기관 중 하나이라 발전하는 것이죠. 그 종류가 더 해지고 더 섬세해지고 깊어지고 강화되면서요. 감정은 인간 꾸며가는 하나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이 번 글에서는 부정적 감정이라 할지라도 신념적이고 도덕적인 것은 반드시 가져야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감정적 화가 있고 신념적 분노가 있는 것이죠.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고 욕이나 폭행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감정적 화인데 그런 부정적 감정이라면 어떤 경우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죠. 창조주도 너희는 왜 나를 화나게 하느냐고 하기도 하지만 그런 화는 아닌 것이죠. 증오도 신념적인 것이 있고 감정적인 것이 있죠.
예수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으면서 저게 목수의 아들인 주제에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래 미친놈 하면서 히죽거리고 빈정대는 경멸의 감정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한 로마 장교는 "그래 자네가 목사이면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환상에 젖어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사람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이라도 마지막으로 제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봐" 하고 엄한 표정으로 신념적으로 따귀를 때리는 경우가 있었다면. 어그러진 감정에 의한 것과 신념적인 것의 차이를 알 수 있죠. 바록 부정적인 것이라도 신념적 감정은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신념적 의식 수준을 지닌 사람들에게 가능하죠. 감정의 세계에 부정적 감정이라는 것은 오히려 한정되어 있습니다. 부정적, 긍정적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무한한 행복의 감정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개발이 사실 원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감정의 세계죠. 표현하기도 어렵고 이해되지도 않는 감정의 세계가 있죠, 인간이 영원히 살면서 무한히 개척해 가는 그런 감정의 세계요.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100살도 못돼 죽은 인간에게서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긴 하지만요.
우선은 사람들은 올바른 신념과 도덕관에 따라 부정적이고 쓰라리다 할지라고 마땅히 가져야 할 그런 감정이 생길 정도로 정상적인 감정기능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부정적이라도 신념적인 감정과 악감정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악감정에서 벗어나는데 급급한 상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죠. 창조주가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긴 했지만 악한 감정은 창조주로부터 유래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