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라는 것은
'종교'가 본질상 거짓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에 선교나 포교는 그것 자체가 그릇된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에 전도라고 할 경우 도 즉 삶의 방법, 최상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전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이 인간이라는 기계의 제작자의 사용설명서일 경우 당연히 모든 인간에게 전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전해받은 설명서를 도를 전해야 한다는 면에 있어서 전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조금이라도 개인철학과 같은 사견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죠. 전도는 신앙이나 종교를 전하는 것도 인간의 삶의 철학을 전하는 것도 아니지요.
오 여호와여, 사람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걷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예 10:23)
위의 기록과 일치하게 어떤 인간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혹은 가장 바람직한 인생의 길로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정치에서 혹은 예술에서 혹은 스포츠에서 즉 그 길에서의 성공에 삶의 목적을 두고 길을 갈 거야라고 해도 어떤 인간도 만족스러운 길을 가게 되지 못하죠. 창조주의 설명서를 지침으로 삼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죠. 인생의 사용설명서 즉 동료인간에게 바로 이 길이다라고 하면서 도를 전하는 즉 전도하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그걸 알기에 오늘날 다른 사람의 철학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완전법칙 혹은 0.1% 법칙에 따라 100% 완전한 사상이 아니면 0.1%라도 오류가 있는 사상이라면 그에 의존에서 인생을 맡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필수부품 중 하나라도 결하거나 고정난 자동차에 몸을 맡기고 드라이브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인간은 자기 자신도 구원을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 누구도 그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인간은 스스로 가장 성공적인 삶의 방법에 대한 답을 알아낼 수 없죠. 인간이라는 기계는 인간이 만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너무 복잡하여 그걸 해체해 살펴보고 사용설명서를 만들기는 역부족이죠.
물론 창조주는 그 설명서를 가자고 계시죠. 성서이죠.. 그 안에는 쉽고 간명하게 이렇게 살라고 하는 지침들이 있죠. 문제는 그것을 인간에 대한 사용설명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성경대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극소수이죠. 세상 배후의 통제자는 바로 기독교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성서를 설명서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했죠. 교리와 행동이 성서와 너무 다른데 성서를 대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 성서를 오해하도록 해왔으니까요.
중략하고 지금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어떤 길도 길이 아닙니다. 즉 모두 멸망의 길이죠. 길을 자꾸 바꾸어 보아야 좌절을 겪을 뿐입니다. 그 점은 철학자들의 극한상황에 대한 설명에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창조주의 왕국에 의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때 그때는 눈을 감고 아무 데나 달려가도 그 모두가 길이 되는 그런 세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