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밝아져
어떤 사람이 눈이 밝아졌다고 하면 시각장애가 있다가 회복된 것처럼 느껴져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뭔가를 사랑(아가페)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의 도덕성이 가일층의 진전을 이룬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영감 받은 표현이라는 말에서 인간이 알아낼 수 없는 심오한 진리가 담긴 글귀라고 생각될 수 있죠. 인간이 어떤 면에서 하느님과 같이 되었다면 그것은 의식 수준의 비약적인 상승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선입관과는 달리 성서에는 단지 중립적인 의미로 이런 표현들이 사용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가페 자체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가장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의미는 "원칙에 근거한 사랑"이라는 의미죠. 나쁜 원칙이 될 수도 있어 꼭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둠을 사랑한다, 세상을 사랑한다, 악을 사랑한다, 쾌락을 사랑(아가페)한다고 하는 것이죠. 어둠을 사랑한다고 할 때 어둠은 악과 수치를 가려준다는 원칙에 의해서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렇게 할 때 쾌락과 물질적 이득이 생길 수 있다는 원칙에 의해서이죠.
인간의 시각기능은 최적으로 되어 있지만 많은 제한들이 있습니다. 우선 인간은 겉 표면만 볼 수 있죠. 그래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관통해 다 보인다면 오히려 그것은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아파트의 차신의 침실에 누워 위를 보면 위층 사람들이 다 보이죠. 그들의 화장실, 목욕탕, 침실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요. 자신의 대해서도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볼 수 있죠. 사람을 볼 때 온갖 내장과 피, 뼈가 다 보인다면 어떨까요? 그렇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일정한 거리, 일정한 밝기, 일정한 주파수의 범위에서만 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얼마나 다행입니까? 또 본다는 것은 감정과 관련된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아무튼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범죄를 한 후에 그들이 눈이 벍아졌다고 창조주는 선언을 했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적인 표현일 뿐이지 그들의 시각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이 서로의 성기를 보았을 때 갑자기 징그럽고 추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부끄럽게 느껴 그곳을 감추었죠. 아담만 선악과를 먹고 하와는 먹지 않았다면 오늘날 여자들만 나체로 활보했을 것이라는 유머도 있죠. 이는 인간이 그 표면뿐 아니라 내장을 동시에 보게 되었을 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일 수 있습니다. 죄를 지었는데 긍정적인 변화가 있게 되었다는 것은 논리적이 아니죠. 인간은 눈이 밝아져 이전에 느끼지 않았던 불쾌를 물밀듯이 느끼게 된 것일 수 있습니다. 죄의 결괴로서의 일종의 벌인 것이죠. 눈이 밝아졌다는 실제의 의입니다.
선악을 아는 일에 하느님과 같이 되었다는 표현 역시 그렇습니다. 원래 인간은 자신이 선악을 정할 자격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이성적, 영적 능력은 신이 부여하지 않았죠. 칸트의 불가지 법칙에서 논리적으로 잘 증명이 되죠. 그런데 인간이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선악을 아는 일에 하느님 같이 되었다고 표현한 것이죠.
그 이후로 인간들은 개개인이 선악을 판단하는 짐을 진 나마지 정신이 이만저만 피곤해진 것이 아니지요. 수천 년간 인간은 번뇌에 번뇌를, 고민에 고민을 더해왔지만 선악에 대해 답을 알지 못했죠. 단 자의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다 혹은 강자의 주장이 선이라는 식의 임의적인 입장을 갖게 되었을 뿐이죠. 자기 기준에 따라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 폭력과 살인, 파괴도 얼마든지 선이 될 수 있어 그런 일을 한 시람은 대단한 선을 행한 것처럼 이계급 특진에 포상휴가를 받기도 하는 것이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느님과 같이 되었다는 말의 의미이죠. 눈이 밝아지고 선악을 결정하는 일에 주제넘게도 창조주의 위치에 처함으로써 이는 인류전체의 비극이 된 것입니다.
'영감 받은 말'이라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죠. 현대는 그동안의 철학과 과학을 바탕으로 매우 계몽적인 사상을 전달하는 것 같은 말들이 있죠. 근래에는 뉴에이지 쪽에서 그런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영감은 꼭 창조주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악한 신으로부터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색이나 연구의 결과 나온 것 같은 말들이 순수하게 인간의 정신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명상의 와중에 영적인 존재의 개입이 있었는지는 인간이 알 수 없지만 창조주는 알 수 있죠. 그러므로 어떤 말들은 악귀의 영감을 받은 것이 될 수 있죠. 오늘날 계몽적인 연구가들에 의해 보급되는 소위 인간의 의식 수준을 높인다는 취지의 주장들은 그러한 것 일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우리에게 주는 실용적인 점들이 무엇일까요? 인간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넓혀가야 되고 사물 특히 영적 사물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 시력을 개선시켜야겠죠. 이러저러한 영적인 목표들을 구체적으로 세울 필요가 있는 데 그 개념에 대해 원래 긍정개념이 아닌 개념들을 더 분명하고 구체화하여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게 되죠.
인간은 올바른 것만을 사랑해야 하고 선악에 대한 창조주의 표준에만 고착할 필요가 있고 인간에게서 나온 교훈들이 무엇의 영감을 받은 것인지 올바로 분별할 필요가 있죠. 불쾌한 것들은 보지 않게 되게 시력이 정상화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