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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06. 2023

여호와

여호와 


어떤 30살 된 사람의 아버지의 이름이 홍길동이라고 하죠. 누가 그에게 당신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는데 "홍기.....돈 인가?"라는 식의 대답을 한다면 아마도 그의 아버지에게 욕이 돌아갈 수 있죠. 


하물며 그 지고하고 거룩한 하느님아버지의 이름을 발음도 정확히 모르면서 사용하는 것은 모독이라고 생각하여 천주교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 종파에서 잘 사용하고 있지 않죠. 유대교도 그러하고 이슬람의 알라는 하느님이라는 의미이며 해당고유명사 자체가 없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천주교에서는 삼위일체 교리의 영향 때문이기도 한데 여호와가 예수가 되어 온 것이라거나 같은 신이기 때문에 따로 구분되는 이름을 갖는 것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죠. 


히브리어가 모음 없이 자음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그 정확한 발음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생긴 현상이기도 한데 사실 한국어에도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고어 자모가 있긴 해도 해당 문자가 남아 있어도 그 당시 발음이 녹음되어 있지 않는 이상 정확한 발음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여호와가 널리 알려져 있죠.. 그러나 실제 발음이 여호와일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헌국어 표기상의 발음으로 영어로는 지호우버, 일본어로는 예호바, 중국어로는 예허화로 각기 다르죠. 차리리 야훼라고 한다면 나라마다 발음이 비슷합니다. 


한국의 곽병구라는 사람이 러시아에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는데 러시아인들  그를 깍빙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나라마다 발음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설령 정확한 발음을 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그 발음을 정확히 할 수는 없는 것이죠. 언어를 혼란케 하여 이를 가장 잘 알 창조주 자신이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기 원한다고 하기 때문에  발음상의 차이는 전혀 문제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서에도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5,000번 정도 나오지만 여호와에 해당되는 네 글자 요드헤와우헤 이 네 글자를 그리스어역본에는 테트라그람마톤이라고 하는데 네 글자라는 의미이죠. 신구약 합해서 7,000번 이상 사용되죠. 그런데 천주교역에서는 이중 네 번만을 야훼로 번역하고 있죠. 개신교에서의 번역에서도 신약에 나오는 수백 번을 그냥 주리고 번역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죠. '주'는 물론 그렇고 '하느님'은 이름이 될 수 없습니다. 대통령처럼 일반칭호에 해당되죠. 영어로는 숭배의 대상인 유일신을 표현할 때 god의 첫 글자를 대분자로 표기하여 이를 나타내는 정도이죠. 그러나 그냥 신에 해당되는 존재는 많습니다. 인간에게 유일한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신은 여호외이죠. 어떤 사전에는 신에 대해 전지, 전능, 영원, 무한, 최고, 절대, 유일한 존재라고 정의하는데 그에 해당하는 것이 여호와이죠. 


주기도문의 첫마디도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름에 대한 인식이 도무지 없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전략상 일으킨 혼란이죠. 예수 자신도 여호와가 유일한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에 단지 그를 숭배하여야 한다고 했고 기도도 그에게만 해야 한다고 했죠. 그런데 단지 주라고 하여 혼란을 일으키면서 예수의 뜻과 상충되게 예수를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여호와는 희석되게 했죠. 


이런 면에서도 기독교는 전혀 성서에 기초한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스철학과 이교풍습을 조합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에 불과하죠. 


저도 여호와나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고 창조주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는 여호와에 대해 잘 인지가 되어 있지 않는 독자들이 혼란을 일으킬 여지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되다'라는 의미의 '하와'의 수동사역형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되게 하다'라는 의미기 되죠 기독교에서는 '스스로 있는 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죠.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초래된 고통과 죽음에 대해 예수라는 대속과 천적정부라는 마련을 통해 이 땅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한다는 인간창조목적을 달성할 것이고 이를 알리기 위해 성서가 기록되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 브런치에 성서의 사상이라는 매거진을 두고 있는데 이에는 수백 명의 사상가나 학자 혹은 연구가들의 저서나 강연에서 성서의 사상을 지지해 주거나 증명해 주는 내용들이 많은데 그걸 요약하여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견이 전혀 아닌 것입니다. 법칙으로 확립된 것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법칙전달자이죠. 제가 그걸 발견했을 때 너무 좋았기 때문에 혹시 한 분이라도 저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하에서죠. 대부분 그 사상 자체만을 전달하고 인명이나 관련된 고유명사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데 진리는 보편적이고 또한 성서에 직접 언명된 사상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 내용이 들어 있는 장절도 생략하기는 하죠. 


저는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고 가능하면 a4 한 면을 넘지 않게 하려 하기 때문에 책 한 권이 될 수 있는 내용을 그렇게 짧은 분량에 넣으려다 보니 비약과 함축이 엄청 심하죠. 할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일반 카페처럼 논쟁하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고요. 


이번글은 여호와에 대래 알리기도 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좀 시간이 나 하루에 세 개의 글까지도 올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간단히 피력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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