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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09. 2023

존영

존영


본인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 지니는 존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가 어떤 인간이든지 상관없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개인이 쌓은 인격적 공덕과 관련된 것이 있죠. 그가 아무리 열등감이나 비천의식에 젖어있어도 그렇고 너무 큰 죄책감에 눌려 곧 자살할 것 같아도 그전 살아있는 동안은 그렇고 곧 집행될 사형수도 그전까지는 그렇습니다. 창조주의 특성을 반영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영이 있고 그것은 소위 인권이라는 개념에도 담겨 있는 것입니다. 물론 속사람의 크기와 그 아름다움은 사람마다 현저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대부분의 인간은 이 존영을 존중받지 못하죠. 극소수의 소위 역사적인 인물 중심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러리나 소모품 정도로 다루어지죠. 


너무나 쉽게 죽고 그렇게 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죠. 소위 어떤 면으로든 뛰어난 극소수의 인물 중심으로 역사가 쓰이고 스토리가 전개되죠. 소위 대다수의 민중은 그들을 돋보이기 위한 액세서리 정도로 취급됩니다. 물론 어떤 시각으로 보면 소위 영웅에 해당되는 인간들과 보통의 평민이나 천민은 인간의 질이 현저히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돋보이는 재능이나 개성이 없어 다룰거리나 쓸 소재가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주목받거나 부각될 요소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죠, 이번 전투에서 아군전사자자가 27,536이라고 할 때 그 가운데 속하는 사람들이죠. 적군의 전사자가 15,000 정도이지만 그래도 성은 지켰으니 장군의 공이 크오 하는 식으로 핵심인물 중심으로 다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상황이라면 예외 없이 단칼 멤버였을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그의 상태와 관련 없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존엄성 즉 존영은 존중되지 않죠. 물론 대다수가 스스로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죠. 


그런 인식을 지니고 있다면 누가 병사로 나갈 것이며 과도하게 세금을 많이 내는 그런 농사를 묵묵히 지을 것입니까? 세속 공식교육에서 그런 존영에 대한 합당한 인식을 갖도록 교육시킬 리 만무하죠. 물론 형식적으로 일과성으로 다룰 때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 실제 의미를 강조하고 그런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하지는 않죠. 그렇게 한다면 상위의 극소수가 지금처럼 사람을 부리며 부와 권력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요. 


반면에 예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제자를 삼았죠. 그의 사후에 세속적으로 두드러진 위치에 있는 극소수의 사람이 추종자가 되기도 했지만요. 


그는 대다수의 천한 만중에게 그들의 존영을 어떻게 올바르게 존중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전하였습니다. 이게 그 당시 권력자들에게 눈에 가시였죠. 


로마군의 한 대장이 군대 시찰을 하고 있는데 한 장교가 노예신분의 병사들에게 그와 같은 지식을 전달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불러와 그런 지식을 그들에게 가르치면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부릴 수 있겠나 한 번만 그런 식의 교육을 했다간 널 독수리 밥이 되게 하겠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오늘날은 계몽된 시대이기 때문에 인권이 과거 어느 때보다 존중되고 소위 갑질은 크게 저항을 받게 되는 그런 시대가 아니냐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럴수록 더 교묘하게 세상은 개인의 존영이 실제로는 존중되지 않은 그런 통제를 받고 있죠. 


맹목적이고 우연한 진화의 산물인데 무슨 존영이 있다는 것입니까?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존영을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제각기 크기와 밝기와 빛깔이 다른 다양한 존영이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가 예술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그가 치장한 외견상의 모습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것과 그가 꾸며온 속사람의 모습에서 풍기는 것이죠. 


눈이 맑고 편견 없이 즉 창조주의 시각으로 훈련된 사람이나 볼 수 있죠. 


갓 태아난 아기도 반짝반짝 빛나는 존영이 있죠. 고귀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를 볼 줄 아는 사람은 그를 소중히 안고 축복하죠. 물론 나이가 들면서 소위 빌어먹을 천덕꾸러기 같이 취급되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여렸을 때는 천사의 모델이었던 바로 그 사람이 커서 악마의 모델이 된다는 소설도 있으니까요. 


존영이라는 시각으로 비친다고 할 때 여러분의 존영은 어떤 모습일지 그려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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