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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11. 2023

그리움

그리움


짝사랑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중병에 비유될 수 있는 그런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열차 안에서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번 마주치거나 힐끗 본 이성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이 의아해할 정도로 얼굴이 수척해지고 소위 상사병을 앓는 경우도 있죠. 자신이 짝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던 사람이 실은 더 강하게 자신을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병은 더 깊어진다고도 합니다. 한 번 보았건 몇 번 접촉했었든 간에 청소년기 이전에 아니 그 이후에라도 강한 그리움을 갖게 되는 체험이란 보통 인간들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실상을 알게 되는 경우 정말 그리워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우선 불문에 부치죠 https://brunch.co.kr/@16e7aa9606ef42a/95 


80대인 한 사람이 젊었을 때의 사랑이 너무 그리워 지인을 시켜 어떻게 사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그녀의 상황을 알고 혼자만 가슴에 묻은 채 본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움이 생기는 것은 이성에 대해서만은 아니죠. 의롭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독특한 매력이 있기도 하죠.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영혼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죠. 만약 그 이후에 자신이 삶을 부끄럽게 살았다면 그를 대면해서 보기에 양심이 가책이 되어 멀리서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고도 하는 것입니다.


레드라는 소설이 있는데 한 섬마을에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고 남자는 육지 도회지로 돈을 벌러 갔습니다. 그 사이에 그는 매우 탐욕스럽고 추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그리워하면서 노년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떤 기회에 그 남자는 그 섬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보았으나 알아보지 못했고 그 남자는 히죽대면서 어떤 한 여자가 자기를 좋아했다는 듯이 읊조렸다죠.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떤 신비롭거나 강한이 매력이 발산된 어떤 상황에 포착되어 뇌리에 아스라이 지워지지 않아 마음에 병적 공허함이나 핍절이 생겨 그것을 다시 확인하지 않는 한 채워지지 않는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에겐가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자신도 모르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환상을 심어줄 그런 요소가 있어 그러할 수 있는데 보통 인간에게 스스로에게는 감지되지 않는 그런 것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욥은 무척 괴로울 때 하느님에게 일단 절 죽여주시고 당신이 정해 놓은 부활의 때에 절 부활시켜 달라고 부탁을 한 후 당신은 손수 지으신 것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수십 년 살면서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그토록 깊이 그리워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느낄 만큼 그렇게 자신의 인격의 아름다움에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욥인 경우 하느님도 자신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는데 무엇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말한 것일까요? 하느님은 욥의 안에 그분이 그리워할 만한 어떤 것을 창출하신 것일까요? 아무튼 여호와는 욥에 대해 자신이 있어 사탄에게 너 욥처럼 의로운 사람 본 적이 있어? 하고 질문한 적도 있죠. 의로운 사람은 숨은 개인적인 매력도 풍부할 수 있죠. 보통 사람이 눈에 띄게 일상에서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요.


그런데 이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잠시만 안 보아도 그리운, 아니 늘 보고 있어도 그리운, 보는 것도 아까운 그런 그리운 배우자와 살고 있을 수 있고 그런 지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대부분은 그런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추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죠. 이해관계나 감정문제로 나쁘게 얽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애정을 갖게 되지 않죠.


사람은 사람을 평가할 때 일시적이고 단편적이고 피상적입니다. 즉 자신이 본 그 순간에 나타난 모습으로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면으로 그리고 전체가 아니라 포착된 단면을 보고 평가하죠. 그런데 그런 모습이나 그것에 의한 평가는 결코 본질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선 그 사람의 전체적인 것 자신이 보았을 때 나타나지 않은 좋은 면까지 포함하여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이 보지 않는 다른 시간에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겉으로 나타난 면이 아니라 그 깊고 숨은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가운데서 평가할 만한 좋은 점이 발견될 수 있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가 자격이 되어 영원히 산다고 가정할 때 몇 백 년, 몇 천년, 혹은 몇 만 년 후에 지금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모든 면에서 이름답게 되었을 그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그런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현재의 그를 느끼고 그를 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기가 더 쉬워지죠.


현실적인 인간들은 여러 제한이나 타고난 불완전함 때문에 여러 불미스러운 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에서는 그런 것을 감추죠. 그런 면이 드러나면 환멸감을 느끼게 즉 환상이 깨지는 실망스러운 감정이 생길 정도로 인간의 실상의 면면들은 시정되어야 될 점들이 많습니다. 구체적인 개개인들은 말이죠.

인간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력 있는 뇌가 있습니다. 굳이 현재의 존재나 실재의 존재만을 대상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소설가나 극작가들이 그렇게 하듯이요. 이상작인 이성과 데이트하고 싶으면 상상적으로 만들어 내면 되고 그의 인격이나 삶의 모든 것을 그려내면 됩니다. 소설이나 영화가 그런 것이니까요.


그리움이란 인간이 지닌 독특하고 고상한 감정일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자기본위적이거나 사치스럽거나 비현실적이거나 주제넘은 감정이 될 수 있습니다. 보통 과거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것이죠. 추억도 일종의 그리움이죠.


그러나 미래를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 강렬하게 미래의 구체적인 어떤 것, 현실세계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그런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가질 수 있죠. 그것이 참된 그리움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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