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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18. 2023

병 주고 약 주고

병 주고 약 주고 


숲을 가보면 만나는 사람의 반 이상이 맨발 걷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건강과 관련된 정보가 넘쳐나죠. 그리고 의약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어 몇십 년 전보다 한 20년은 더 사는 것 같습니다. 고혈압약 등 결정적으로는 약의 힘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죠. 그러나 병에 걸리는 사람의 수도 이전 어느 때보다 비율이 높죠. 미국인 경우 네 사람 중 하나는 암으로 죽는다고 하죠. 식품 혁명과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인데 인간이 먹는 식품에는 살충제가 뿌려지고 토양에는 화학비료가 뿌려지고 유전자 조작까지 된 식품은 온갖 종류의 질환을 유발하고  우리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영양분은 결여되어 있다고 하죠.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제공되는 패스트푸드와 설탕, 탄수화물, 슈퍼마켓에 잔뜩 비치되어 있는 화학 가공식품들, 동물들한테 믿기지 않는 고통을 가하고 끔찍하고도 비인도적인 취급을 하는 공장형 농장에서 나온 육류, 우리는 또 그 에너지를 섭취하고 있죠. 몸속으로 들어오는 식품을 통해 사실상 독살되고 있다는 말이 있는 것이죠. 


몸을 병들게 하는 식단의 맞은편에는 불필요한 악처방과 수술을 종용하는 의학계가 있는데  건강하기 위해서는 제약회사의 약 같은 그들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선전되고 있는데  약이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죠. 근본적인 원인은 무시하고  표면적인 증세만 치료하는 것이 약인데  약을 필고 수술비를 받아야 의료계의 부가 유지되므로 고위층들은 사살상 국민들이  건강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하기까지 하는 것이죠. 현대의 혼란한 상황에서 적어도 네 사람 중 하나는 정신병적인 증세가 있다고 하는데 우울하게 해 놓고 항 우울제 같은 약을 팔아 부를 취하고 있는 것이죠. 


매스컴에는 온갖 부정적인 내용들, 폭력, 증오심의 실인적인 표출, 폭동, 자연재해 등등 두려움을 최대한 자극하는 방밥으로 부각하죠. 시청자는 내게 저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기 않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더 매달리게 되는 것이죠.  세상은 끔찍한 곳이야.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영적으로, 도적적으로,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얼마나 가난한지는 생각지 말고 하라는 일이나 열심히 하고 묵묵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게 부족하면 쓸데없는데 신경 쓰도록 스포츠, 연예인가십거리 등등 본질상 무가치한 것들을 방영하여 시청자들이 한눈을 팔도록 하는 전략을 사용하죠.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일들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전혀 의미가 없는 내용들을 내 보내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들이 갖기를 원하는 세계관을 전달하고 주입시키려는 시시프로나 정치 논평 같은 것을 방영하기도 하고요. 


뱅커들은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돈을 빌려 주죠. 사실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대개 통치자들은 그 돈을 탕진하고 이자도 갚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럼 선진국 뱅커들은 돈 갚기 힘들지? 그럼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 대신 땅이나 좀 빌려달라고 하죠. 그래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돈 되는 작물을 재배해 수출해 버리죠. 그 나라 국민들에게 그렇게 필요로 하지도 않고 직접 민들 수 있는 물건들은 그 나라로 수출하죠.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핵심적인 자원들은 빼돌려진다는 것입니다.  3세계 국가들은 국민을 먹이고 입힐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국가의 지도자들이 외국은행에 빚을 져서 불행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방치된 가난이라고 하죠. 유니세프 등에서 월 만원씩만 기부하여 병이나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자는 운동의 원인이 되는 것이죠. 


드러나지 않는 세상의 배후 통자자의 주된 통제수단은 아닐 수 있지만 식품, 의약시스템, 매스컴, 금융시스템으로 세상을 악하게 통제하고 있는 단편들을 엿보게 하는 것들입니다. 


값싸고 맛있는 음식, 의료시스템, 재미있는 TV프로들, 쉽게 빌려주는 돈들, 일견 달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이용당한 채 영적으로는 병들어 죽게 되는 그런 노예 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그런 통제수단이라는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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