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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상학

어휘부족으로

by 법칙전달자

어휘부족으로


인간은 어떤 경우에 변하지 않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어떤 경우에는 변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아무리 좋은 술이나 음악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그 술만 나오고 그 음악만 틀어 준다면 지겨울 것입니다, 가끔 라면을 먹는 것은 별미가 될 수 있어도 같은 라면을 매끼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먹으라고 한다면 정말 보기도 싫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변덕이라는 나쁜 특성 때문인 것이 결코 아니지요. 원래 다양하고 변화 있게 주어져야 하는 것에 대해서 그와 관련된 법칙 어김이 있어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매번 같은 라면만을 먹는다면 결국 영양실조로 죽게 될 수도 있죠.


그런데 영원한 배우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남편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남편이 갑자기 아무개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이혼하자고 할 때 매일 같은 이성만 대하는 것이 너무 지긋지긋했는데 드디어 내게도 그 면에서 변화가 왔구나 하고 좋아할 것입니까? 오히려 배신의 충격으로 자살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어떤 감정이나 기분은 원래 일시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당연히 변하죠.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처음에는 10이라는 강도의 감각을 얻다가도 계속 접하다 보면 감도가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죠. 보통 감정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것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좀 지속적인 것을 정서라고 하지요. 감정이 어떤 사람에게 지배적이고 상당히 지속적인 것을 그 사람의 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대상에 대해 같은 감정을 영속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일 때 또 그 대상에 대한 감정상태가 영속적인 것일 때 정조(情操)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이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차용한 것이죠.


원래 감정이 일시적이고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지에 대한 분화된 전문적인 용어가 없어서 기존의 단어에 용어로써의 의미를 덧붙여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죠.


감정적인 면뿐 아니라 지적인 면으로도 순간적인 지혜를 기지 혹은 재치라고 하고 지혜라고 할 때는 다소간 지속적인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4,,50년 전에 쓰인 소설은 그 당시 10년이나 20년 정도는 어떤 현실적인 가치가 있었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한두 달 전의 신문 사설 같은 것도 그러합니다. 그때만 의미가 큰 그러한 것일 수 있습니다. 반면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지혜를 예지(叡智)라고 하는데 고전이 그러하고 성서가 대표적이죠. 수천 년 전에 쓰인 것인데 오늘날에도 현실적으로 적용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고전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지라는 단어도 새로운 용어를 만들 수 없어 그런 뜻을 추가하여 차용한 것이죠. 영적인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해당 어휘가 부족한 것입니다.


한국에는 쌀문화가 발달하여 모, 벼, 쌀, 밥과 같이 어휘가 분화되어 있죠. 영어로는 이에 대해 rice 하나뿐이어서 문장이나 어절을 만들어 그 단어에 상응하는 뜻을 표현할 수밖에 없죠. 반면에 고기문화는 영여권에서 발달했으므로 부위마다 다른 단어를 쓰는 것을 한국어로는 갈매기살, 갈빗살, 목살, 가슴살 등으로 합성어를 만들어 써야 하죠. 에스키모 인들은 눈이나 얼음문화가 발달하여 쌓인 눈과 내리는 눈 얼음집 만드는 눈을 칭하는 단어가 각각 다른데 한국어로는 이를 구분하려면 어절을 추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리는 눈, 쌓인 눈, 얼음집용 눈과 같이 표현해야 하는 것이죠. 뭔가 성격이 다르면 다른 단어를 쓰는 것이 합리적이고 편리한데 그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으면 언어의 미분화가 있게 되죠. 내리는 눈과 쌓인 눈은 틀림없이 성격이 다르므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죠.


사랑문화나 영문화 등이 미발달 하다 보니 어휘부족으로 사상을 표현하는데 상당한 불편이 따르죠. 아가페, 에로스, 필리아 등으로 외래어로 직접 사용하기에도 보총설명이 필요한 것이죠. 사랑에 해당되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8개쯤 된다고 합니다.


이 글은 언어적인 측면에 대해 쓰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식에 있는 영원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죠. 영속성 있는 지혜와 감정에 대한 것이죠.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지혜가 담긴 교훈 아니 마땅히 영원히 따라야 할 교훈이 있고 창조주나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당연히 영속적인 것 즉 정조 차원의 감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상이나 성격에 맞는 감정을 지녀야 하고 기지를 발휘해야 하는 것인지 예지를 적용해야 하는지를 분별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곧 죽을 거라 막사는 인생이라면 이와 같은 지식이 필요 없겠죠. 그러나 인간의 의식에 심어진 바 영원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면 이와 같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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