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는 없다.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이라는 사형, 보통 중죄인이 아니면 사형으로까지 최종 확정되지는 않죠. 그리고 그렇게 됐다 하더러도 언제 집행될지 모르죠. 비록 그 사람이 연쇄살인범으로 여럿을 죽였을지라도 즉 그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같이 여겼을지라도 사법적으로 인간의 목숨은 매우 존중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소위 인권개념이 확립되어 예전처럼 태형이나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그런 형벌도 없습니다. 무기형을 받았다 해도 갇힌 상태에서 산다는 것뿐이죠. 그가 피해자에게 아무리 끔찍하게 했어도 눈에는 눈으로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죠.
성서에 나오는 멸망이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죽이는 것이 멸망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죽는다는 것은 단지 의식의 중단 즉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고 성서에도 직간접으로 여러 번 그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죽일 때 단지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라 지지고 볶아서 최대한 고통을 겪다가 죽도록 했죠. 적군이라도 죄인은 아니므로 적을 죽일 때 깨끗하게 참수하는 것이 일종의 예의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드라마나 소설 같은 데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은 너무 쉽게 일어나죠. 사소한 일에도 칼을 휘두르는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위엄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죠. 죽이면 죽일수록 위엄이 더 커지는 것이죠. 사실 실제의 역사도 죽음의 사건들이 중심입니다.
특히 전쟁은 살인이 죄가 아니라 가장 큰 공으로 바뀌게 되죠. 지휘자는 한 놈도 빼지 말고 다 죽이라고 호령하는 것입니다. 영화 같은 데는 대량학살을 예술인 것처럼 묘사하죠.
성서의 하느님도 많은 살육을 행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죽이는 것이죠. 대부분은 의식의 영원한 소멸로서의 멸망은 아닙니다. 모든 의식 있는 존재 확실히 적어도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죽음이라는 개념이 있었죠.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죠. 그 이후로 천년이상 산 인간은 없습니다. 성서 기록상 969세가 최 장수기록이죠.
영적 존재들은 이점에 있어 좀 다릅니다. 그들은 존재 이후로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범죄 한 천사들은 악귀가 되어 타타루스라는 활동이 제한된 상태에 있다고 하죠. 사탄도 욥의 시대에만 하더라도 창조주와 대면해서 대화할 수 있었죠. 지금은 아니지만 조만간 그는 무저갱에 갇히어 인간에 대해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다가 천년 끝 무렵에 다시 한번 인류를 유혹하게 허용된 후 그를 추종하는 악귀들과 함께 영원한 멸망에 처해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나 무슨 뜬 구름 같은 악한 영들에 대한 이야기나 모두 부정적인 것이어서 결코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요. 저도 이런 내용을 쓰지 않는 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4 속성 중 공의가 있죠. 의식 있는 존재는 이 특성 때문에 창조주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병적인 두려움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을 불쾌하게 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경건한 두려움이죠. 이러한 두려움은 상사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갖는 태도나 감정인 것이죠.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마땅히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이재 본론에 이르겠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 대해 영원한 멸망을 선고하고 이를 집행할 때는 우주의 다른 피조물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내면상 아무리 악하고 곧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것이 확실하여 예방차원에서라도 그를 제제할 수 있지만 이는 다른 피조물이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성서에서는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는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의 지혜자들이 그렇게 될 것이고 어린아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이 그 명백한 증거들을 보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창조의 법에 순종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그렇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린 적이 있죠.
혹시나 세상적으로 지능이 높은 사람이 진라의 말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그거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진정한 믿음이 없으면서 혹시나 하고 겉으로는 하느님의 참숭배자들과 함께 하고 멸망받을 세상의 악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죠. 위선적이고 기회주의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고 동기가 불순한 것이죠. 그런데 주위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처벌하려 하는데 그를 처벌하면 피조물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흔쾌한 찬양을 받지 못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딜레마에 처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그런 상황이 되지 않게 세속적이고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이해의 눈이 열리지 않게 인간의 의식을 애초에 그런 식으로 만든 창조주께 감사한 것이죠.
이 글 역시 재미나 의미가 없고 이해도 되지 않을 그런 내용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창조주인 우주주권자의 옹호자이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면에서의 그분의 올바름을 변호한다는 차원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죠.
왜냐하면 조만간 1,000만 정도의 인간을 제외한 모든 인류 즉 영적 방주를 타지 않은 모든 인류에 대해 노아의 홍수때와 같은 무차별적인 멸망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일관성 있게 말해 온 멸망이 바로 우리 시대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의롭고 참사랑에 넘치는 온유하고 겸손하고 순종적인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