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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상학

가아(pride)

by 법칙전달자

가아(pride)


히브리어 가아는 영어로는 pride로 번역되고 이 단어는 한국어로는 흔히 자존심으로 번역되지만 교만으로 번역하는 것이 원어에 가장 근접하다고 합니다. 오만, 거만, 자만이 그 유의어이며 자랑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한국어 자존심이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듯이 자신의 재능이나 아름다음이나 부나 지위 등으로 인해 과도한 우월감을 갖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 실제 이상으로 높이 평가하는 마음이 될 수 있고 의외로 상대가 그 평가와 일치하지 않게 대할 때 느끼는 불쾌감을 자존심이 상한다고 표현하기도 하죠.


자존심은 본질상 교만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고 이 교만은 부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한 사람 즉 교만한 사람은 그 점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회피하려고 자신의 행동에 다른 명분을 부여하려 할 것입니다.


이 글은 이 pride에 대해 직접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의식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고래로부터 잘 확립되어 있고 인간의 뇌의 구조와도 일치합니다. 의식의 3요소는 생각, 감정, 행동이라고 하는데 행동이 왜 이에 포함되는지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그 정의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 타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사람의 영혼을 머리, 가슴, 배의 3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각각 생각, 감정, 행동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정신, 마음, 몸이라는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신과 마음을 동의어 혹은 유의어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매우 구별된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여기서나 제 글에서는 그렇게 사용합니다. 정신은 생각 혹은 지, 마음은 감정 혹은 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추리, 연산, 기억 같은 것은 정신에서, 감정, 욕망, 애정, 동기 같은 것은 마음의 일인 것이죠. 확연히 성격이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 혹은 지적인 것과 관련해서는 뇌의 신피질 중심의 외피에서 다루죠. 감정과 관련해서는 번연계중심의 내피에서 그리고 행동은 소뇌에서 다루는데 뇌는 크게는 이 신피질, 번연계, 소뇌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에 상응하는 생각, 감정, 행동을 의식의 3요소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여기 행동은 의식 혹은 뇌과학과 관련된 일종의 용어로써의 특별한 의미이며 일상적인 어휘로서의 행동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 의식을 뭉뚱그려 생각이라 할 때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든 생각이죠. 즉 생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관념일 뿐인 것이죠. 그래서 어떤 철학적 논쟁을 할 때 그것은 너의 주장 혹은 너의 관념, 상상, 정신의 소산물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물자체 혹은 진실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크게 자가당착적인 것이죠. 그 주장 자체가 하나의 생각, 관념, 하나의 부정적인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그 사람의 이러한 주장을 그 사람의 그 부정적인 생각 자체에 적용시켜 보면 그 주장 자체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오히려 그런 주장은 긍정법칙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궤변에 불과한 것이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생각, 관념, 혹은 의식을 초월한 어떤 생각이나 관념 혹은 의식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욕망이라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그것이 불행이나 고통의 원인으로 생각하여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서 해탈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경우 그런 태도의 모순을 지적하여 그 해탈을 향한 불같은 욕망은 어찌하랴와 같은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중립적인 의미에서의 욕망이 의식의 한 특성이라면 인간은 욕망이라는 것에서 초월할 수 없죠. 무표정도 일종의 표정이므로 얼굴가죽을 벗겨내지 않는 한 인간은 표정이라는 것에서 초월할 수 없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일종의 행동이므로 인간이 몸을 벗어나지 않는 한 행동이라는 것에서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인간은 겸허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관념이나 욕망, 표정이나 행동 등에서 초월하려 하는 것은 가능한 것도 아니며 미덕도 아니라는 것이죠. 미덕인 것은 올바른 생각, 선한 욕망, 좋은 표정, 바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러한 것인가 하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표준이 있을까요? 물론 있다면 창조주가 정한 표준이죠. 그에 의하면 머리로는 진리를 배우는 것이고 가슴으로는 사랑과 같은 도덕성을 함양하는 것이고 몸으로는 창조주의 관점에서의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서두로 돌아가서 인간은 이 자존심과 관련해서도 어쨌든 구체적인 의식 상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당한 자존심이건 합당한 자중심이나 자존감이건 자기 비하의 감정이나 비천의식 혹은 열등감 등등의 성격의 태도와 관련해서 뭔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pride로 번역된 가아는 주로 교만이나 이기적인 자랑, 부당한 우월감, 우쭐댐 등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며 이는 범죄적인 것 그리고 멸망의 원인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드물기는 하나 간혹 행동이나 소유한 자산으로 인한 기쁨이나 고무된 감정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그가 창조주의 관점에서 선한 행동을 하여 기쁨을 갖게 되었거나 진리에 대한 풍부한 자산으로 인해 마음이 뿌듯하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pride인 것이죠.


그래서 성서에서는 나는 proud 야곱, 직역을 하면 자존심 있는 야곱, 어떤 번역에는 야곱의 자랑을 사랑하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 proud는 pride(가아)의 형용사형임


그러므로 인간은 각자 자신의 내면을 잘 살펴 자신의 이 pride와 관련된 의식 상태가 어떠한지 확인하고 창조주의 사랑을 받을 만한 것으로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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