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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04. 2021

머릿수와 현실

머릿수와 현실     


머릿수로 뭘 결정한다는 것은 어이없는 생각입니다만 오늘날은 머릿수로 통치자를 뽑고 정책이나 제도를 결정하죠. 인간의 끔찍스러운 무지의 소산입니다. 물론 무지의 소산은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머릿수뿐 만 아니라 상대적인 권위도 그렇습니다. 어떤 영역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본질상 참이나 선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너 길 막고 사람들한테 물어봐 백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 라고 말한다고 해서 설령 실제로 그렇게 해보아 그런 결과가 있었다고 해서 그 생각의 진위여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학계의 권위 있는 석학들이 모두 동일한 생각을 한다고 해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옳은 것이 될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그런 것은 모두 논리의 기본 오류에 해당하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을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말은 현재의 실제 사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모르죠. 눈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사실의 일부분이고 그나마 시각 범위 안에 있다고 해서 지각되는 것도 아니고 지각된다고 해서 인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96%의 청소년이 욕을 한다고 해서 욕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은 전혀 아니지만 욕을 일종의 문화 즉 현실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의 참됨을 머릿수나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의 권위에 영향 받아 결정하려는 것은 스스로 거짓에 참여하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그것이 겪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노아 때는 어떤 사람들이 적어도 수십억이라고 추정하는 그 당시 사람들 중에 절대자에 의해 노아만 올바른 생각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을 때 신은 모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멸하고 모세의 자손으로 하나의 민족을 만들겠다고 할 정도로 절대적인 시각에서 머릿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성서의 사상이기도 하죠.  

   

인간은 영계를 볼 수 없으므로 더 본질적인 현실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배후의 영적 근원이 더 강력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죠. 동물들이 근시안적으로만 보고 먹이를 먹으려하다 덫에 걸리듯이 인간의 삶은 바로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근원적인 현실은 동물을 잡겠다는 인간의 의도이죠. 그리고 덫을 만들어 놓는 물질적인 현실이 있죠. 동물은 그러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눈앞의 먹이만을 현실로 파악한 나머지 덫에 결려 삶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영계의 현실과 그에 의해 관리되고 조정되는 물질계의 현실도 보지 못합니다. 그저 눈앞의 정치 경제를 현실로 파악하죠. 돈과 쾌락을 추구하며 살죠. 매체도 온통 그러한 것을 중심으로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걸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죠.     

진실은 머릿수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적용하는 것이 삶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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