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군자가 더 쉽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임종 시에 모처럼 큰 아버지를 만난 자리에서 그분은 저의 따귀를 때렸는데 여러 의미가 복합적으로 있는 것 같았고 저는 조금도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적극적인 관심표현에 미미하나마 감격의 감정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큰 아버지는 오히려 약간 격해져서 저를 붙들고 흔들면서 그런 경우에는 화를 내면서 왜 때리느냐고 항의를 해야지 오히려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것이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고 매력적인 이성을 보면 성적으로 접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기는 것이라고 하죠. 욕을 들으면 화가 나는 것이라고 하고 급박한 곤경에 처하면 사람은 자신의 필요부터 살피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반응이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원칙에 벗어난 것이고 부도덕한 것이라는 취지로 얘기하면 꼭 성인군자처럼 말한다는 조롱을 받기도 하고 미움을 받는다는 분위기도 느끼는 것입니다. 그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같이 대화 못 나누겠네 라는 반응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물론 탐심을 멀리 하라고 하셨고 마음으로 간음한 것도 그리고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 자체가 죄라고 규정하는 것이죠.
창조주가 직접 썼다는 십계명에도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간음 등을 하지 말라는 조항이 언급되고 마지막으로 탐심을 갖지 말라고 하죠. 행동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의식에 대한 규정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살인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도둑질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음행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욕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어느 쪽이 쉬울까요? 물론 후자이죠. 그러나 강한 증오, 물질에 대한 급박한 필요나 혹은 탐욕에 처하게 되거나 성에 대한 욕구가 너무 강하다 보면 그런 행위를 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겠죠.
그런데 증오나 탐욕 같은 것은 일종의 마음의 파동입니다. 의식에서 일으키는 어떤 종류의 파동은 증오가 되는 것이고 욕심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파동은 결코 평화나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뭔가 꼭 하고 싶기는 한데 그것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거나 하지 못하는 것일 때 그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병 특히 정신병적인 증세를 보이는 것이죠. 안절부절못하고 집중을 못하는 것이죠. 그러나 욕심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면 마음이 평화로운 것이죠.
100이면 아흔아홉의 의식에 그런 파동이 생기고 그것의 지배를 받아 직접은 아니더라도 말이나 영상이나 게임으로 그것을 즐기거나 교묘한 방법으로 사기 치는 것을 획책한다 해도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걸 정상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또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성인군자냐고 비아냥을 받는 것이라면 성인군자가 되어야죠. 그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떤 주장이 옳다면 화를 내거나 빈정거리면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틀림없이 증오나 물질적, 성적 탐심은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죠. 그런 비정상적인 마음상태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의식상태가 되었다고 해서 성인군자라고 하면 누구나 그렇게 되어야죠.
맞습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모든 사람은 그 수가 얼마든지 멸망될 것입니다.
성인군자가 그렇게 쉽게 될 수 있고 돈 한 푼 들지 않는 것인데 왜 그렇게 못됩니까?
그것이 평화롭고 쾌적하고 행복한 것인데요.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악귀적인 것입니다.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관련 진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는 단지 전달자의 입장이죠.
그런 악한 파동이 생기지 않는 의식을 가진 사람의 마음의 평화를 상상해 보십시오. 숨 쉬는 것 자체가 지극히 큰 행복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식에 참 사랑의 파동이 치는 사람만 그렇게 되는 것이 가능하니까요. 물론 특정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악에 대해서는 증오의 파동이 쳐야 하죠. 그런 부정적인 파동은 결코 악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고 유익한 것이니까요.
생각을 옳게 바꾸면 의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왜 단지 사랑 혹은 그와 조화를 이루는 것만 나타내야 할 동료, 마음에서 당연히 지극히 사랑해야 하는 동료인간의 것에 대해 부당한 욕심을 가지면서 그것을 당연하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비정상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입니까? 창조주도 그런 마음상태에 대해 역겹다고 표현하였으므로 의로운 사람의 가슴에 그런 파동이 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 사랑을 첫째라고 가르치는 창조주가 사람을 멸망시키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반복적으로 해주는 옳은 말을 듣지 않고 익한 것을 선하다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