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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23. 2023

자신의 외모가 못마땅하다면

자신의 외모가 못마땅하다면


저는 10대일 때 어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제 외모가 유리에 힐끗 비취는데 그것이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추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도 그대로 표현하기에 자존심 상할 정도의 그런 괴기스러운, 외모에 대한 어휘들로 별명이 붙여졌죠. 


나이가 들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주의를 듣는 정도였습니다. 너는 사람을  쳐다보지도 말고 사람 주변에 가지도 말라는 것이지요. 섬뜩한 혐오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제 정서를 지배한. 허무주의와 열등감이라는 두 축 중의 하나가 되었죠. 요즘도 지나다가 희미한 윤곽이라도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 제 자신이 섬뜩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내성적이고 극단적으로 자기 폐쇄적이 된 것은 당연하죠. 열등감은 늘 의식을 지배하고 있어서 중 1 때 열등이라는 장편 소설을 쓰기도 하였죠. 물론 사진 기피증이 있는 것도 당연하고요. 면도도 거울 안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하는 정도이고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는 것이죠. 그게 편하고 가끔 보이면 끔찍하니까요,  


한편 사람들이 호감을 가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편한 일면도 있었습니다. 고립의 생활을 정당화할 수 있었고요. 지금도 오히려 외모가  뛰어나서 그것이 자부심의 원인이 되고 봐달라는 듯이 자랑스럽게 드러내면서 다니는 경우가 되는 것보다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대인 공포증, 대인 기피증이 있었던 것도 당연하고 군대 같은 데서는 오히려 신입을 두려워한다는 놀림을 받기도 했죠. 타인에게  동정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원칙이 나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주제넘은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던 원인일 수 있죠. 


한편으로는 그것 때문에 지금처럼 영지향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라면 오히려 다행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볼 때 바로 영혼을 보는 통찰력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고요. 


이사야에 묘사된 예수의 외적인 것은 비천하고 보잘것없다는 것인데 물론 그것은 그분의 신분, 세속적인 배경 같은 것이 그러하다는 비유적인 것이고 모든 면에서 완전했던 분이 얼굴 중심의 외모 또한 영화나 그림 같은 데서 묘사하는 완전하고 거룩함이 깃든 그런 것일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은 진화가 아니라 오히려 퇴화의 와중에 있어 수천 년 전 사람보다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외모를 지니고 있어 진정한 미남 미녀는 없는 시대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부자이건 가난하건 정신이 물질집착에서 자유로운 것이 중요하듯이 비교적으로 좀 괜찮은 외모를 가졌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런 것에 궤념치 않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취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죠. 


하느님의 약한 것이 인간의 강한 것보다 강하다는 원칙에 따라 지금 가장 잘 생긴 사림이 천년 후의 가장 못 생긴 사람보다 못생겼을 것입니다. 자신의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얼굴 모습 때문에 영혼, 인성에 악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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