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것은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전달입니다. 전달받은 것을 전달하는 중에 빠트린 것이 있거나 임의로 첨가하는 것은 귀책사유가 되는 것이죠.
아무리 유능한 교사나 강사라도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서는 영예를 받지 못합니다. 그 출처가 어디인지는 잘 알려진 것이니까요.
교사는 가르치는 대상의 수준이나 상태에 따라 사용어휘나 예나 비유의 종류나 수 등을 선택할 수 있으며 나름의 독특한 기법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희열이란 인간의 본질적인 행복 중 합니다. 이 행복감을 많이 강렬하게 제공하는 교사야 말로 유능한 교사죠. 일타강사라고 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할 수 있겠습니다.
성서에서도 잘 가르치는 자를 배나 존경하라고 하는 것이죠. 여호와는 최고의 교육자이지만 직접 가르치지는 않지요. 인간에게 이 보람 있고 기쁨이 되는 일을 위탁하는 것이죠. 으뜸 교사는 당연히 예수이죠.
그런데 주의할 것은 스승이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도 구원하지 하지 못하고 완전한 귀감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하죠. 인간이 말이나 글로 자신을 따르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범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본질이나 삶의 방식에 대한 사견을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영적인 문제들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은 옳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그러한 성격의 것을 사실 가르치겠다는 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주제넘음이고 죄인 것입니다. 흔히 정치지도자 라고 합니다.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정견이라는 것은 이러한 원칙을 범하는 것입니다. 종교적 교리를 가르치는 것도요.
그러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름 사적으로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싦의 여러 부면의 상황에 대처하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모두 헤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인간은 겸허하고 지혜롭게 순수하게 전달만을 해야 할 뿐인 것이죠.
그런데 언어라는 것은 이와 같은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상황을 자세히 알리는 것도 있고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특별한 경험 그것이 너무 인상적이거나 행복감을 주었기 때문에 이를 동료와 공유하고자 하는 말이나 글들이 있죠. 감상에 대한 공유이죠. 이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개인의 수사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전할 수 있죠.
가르친다는 것은 오성적인 것 즉 학문적인 것일 경우 먼저 자신이 그것을 잘 이해한 후에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런 면에서 누구나 유능한 교사가 되려고 해야 하죠. 그리고 영적인 것이라면 전적으로 창조주에게서 받은 메시지만을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일치하지 않는 모든 사적인 것은 범죄적인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그러한 충동에 굴복하여 그러한 주제넘을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 모르지만 악한 것이기 때문에 각별히 유념애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 자체가 창조주의 메시지와 일치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