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우환

by 법칙전달자

삶의 우환


백만 송이 장미는 러시아의 국민가수 알라푸가체프가 불러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죠. 그런데 원래는 라트비아의 아이쟈 쿠클레라는 가수가 불렀고 가사도 전혀 다릅니다. 원곡의 가사에는 한 엄마가 딸을 애지중지 키워 행복하라고 세속에 내보냈는데 그 딸은 많은 우환에 직면하였죠. 그래서 어머니가 곤경에 처했을 때는 마리냐신에게 의지하라는 부탁이 담겨있죠. https://www.youtube.com/watch?v=9sCHqgx4XPs

사람은 태어나 몇 년간의 거의 전 시간을 보호자의 보호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는 것으로 시작해서 세상에 진출하게 되죠.


그런데 사람은 거의 어린 시절부터 피치 못하게 우환을 겪게 됩니다. 아무도 바라지 않지만 아무도 피해 갈 수 없죠. 안팎으로 매우 다양한 우환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극히 드물게는 "나는 아닌데?"라고 할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고통은 삶의 반대이죠. 큰 모순이기도 합니다. 극한 곤경에 처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신을 찾는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애타게 부르짖어도 죽게 되는 상황이면 죽게 될 뿐이죠.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 때문에 사람들은 무신주의로 살게 되죠. 그러나 그런 현상들이 있다 해서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그런 경우들이 실제 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인간개개인의, 삶과 반대되는, 창조의 목적과 상충되는 그런 부조리한 곤경에 처해 신을 향해 부르짖는 경우 답이 없는 것일까요? 결론은 결코 그렇지 않다입니다. 오히려 그의 동기가 순수한 경우 특히 오늘날은 모든 경우에 진정한 응답을 받으며 또 그래왔습니다. 인간을 그처럼 우환에 젖게 하고 곤경에 처하게 하는 세상상태에 대해 한탄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구원의 표를 하라는 명령을 그 추종자들이 받고 있죠. 천사들도 이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조주에게 개인적으로 진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개인에게 가까이한다는 약속도 있죠. (아고보 4:8)


물론 많은 사람들은 돈 있고 건강하면 살기 좋은 세상 아냐?라고 할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아름답고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이 많으니 이 세상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롯의 아내도 그 당시 멸망할 세상인 소돔과 고모라에 미련이 많아서인지 돌아보다가 죽게 되었죠.

아브라함은 멸망될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죠. 그러나 롯 이외는 없었고 롯도 천사들이 재촉하여 그 도시를 빠져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피치 못하게 우환이 발생하는 이 모순된 세상에 인생을 걸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출세하여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절대다수가 그러하죠. 그러나 적어도 수백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비유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물리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분리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에 이 세상에 대해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세상의 멸망만을 기다린다는 것이죠.


왜 아무도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는데 모두가 한계상황 즉 절망적인 곤경에 처하게 되고 우환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 세상에 희망을 갖고 애착을 갖는 정신이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시하는 비전은 헛것이며 속임수입니다. 결코 인간을 그 우환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못합니다. 아니 그런 절망적인 우환이 생긴 것이 바로 이 악한 세상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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