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어야 하는가?
물질적인 것, 물리적인 것은 필수적인 것이긴 하나 매개적인 것입니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고 행복은 일종의 의식의 상태입니다. 그 자체는 영적인 것이죠. 인간만의 행복인 것입니다. 주변에 행복의 소여가 되는 것은 지천으로 널려져 있죠. 그리고 인간 자체도 인간에게 큰 행복의 소여가 되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성적인 면면들도 그러하죠. 음악이나 그림을 통해 행복한 것도 음파나 광파 즉 전자기파로 인한 것이죠. 음식을 통한 행복도 음식물의 분자와 미각세포가 매개가 되죠. 이 행복은 양이나 질이나 강도에 있어 나날이 증가하는 것이며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개입되죠. 이에 대한 감사와 찬양은 행복을 배가시키죠.
그런데 배가 고프거나 칼에 찔려 아프거나 병에 걸린 상태라면 행복을 누릴 수 없거나 제대로 누릴 수 없죠. 삶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죠. 신성한 삶의 목적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목이 없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죠.
동료인간이 이와 같은 행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물리적인 제한을 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것은 인간의 신성한 존재목적을 침해하는 것이죠.
인간은 물리적으로 생리적으로 취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약간의 비상으로도 죽일 수 있죠. 잘못 넘어져도 뇌진탕으로 즉사할 수 있죠. 요즘은 손가락만 까딱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죠. 물에 빠트려도 낭떠러지로 떨어트려도 죽일 수 있죠. 가스실에서 숨 못 쉬게 하는 화학약품으로 수백만을 죽였다고 하기도 하지요. 목숨이 질기기도 하다는 말이 있지만 급소 한방 잘못 맞으면 너무 쉽게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동료인간이 행복을 누리는데 필요한 물질적, 물리적, 생리적 요건들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되죠. 특히 사람사이의 행복이란 사랑이란 영적인 것이 절대적으로 매개가 되죠.,
침해한다는 것은 사랑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이기도 하죠.
결론적으로 동료인간에 대해 이렇게 하거나 그런 행위에 동조하는 사상을 가진 인간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99% 이상이 그러하죠. 유혈죄에 직간접적으로 적극 가담한 상태이죠. 유사시 이기적인 목적으로 동료인간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그런 사상을 지지하고 있죠.
인간은 인간을 죽일 권한이 없는데도 적어도 수십억이 그런 식으로 죽이기도 하고 죽임을 당했죠.
창조주가 이러한 인간들을 노아의 홍수 때처럼 싹쓸이하는 것은 당연하며 속히 그렇게 되기를 열렬히 고대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