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의 허상
‘욕망’은 그것을 정의하기에 따라 부당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한 추구”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그렇게 정의하면 ‘그릇된 욕망’이라고 하지 않아도 욕망 자체가 그릇된 것이 됩니다. 그리하여 온갖 고통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욕망에서 ‘그릇되다’는 개념을 뺀 것을 ‘의욕’이라고 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소위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떤 유명한 소설가의 어록에는 “해탈을 향한 불같은 욕망은 어찌하랴?”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욕망이라 욕망 자체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부정적인 의미를 뺀 일반적인 의미의 욕망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인간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 즉 의욕하는 것은 일종의 본성으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미덕도 아니라는 것이죠. 욕망은 의식의 필수 부분으로 의식 있는 존재는 누구나 욕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의식의 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인간에게 권고되는 것은 욕망에서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욕망 즉 좋은 의욕을 갖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지식을 안다면 과연 자신은 바람직한 욕망이라는 것이 있는가? 바람직한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관련 법칙들을 자신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실용적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욕망에 대해서 뿐 만 아닙니다. 예를 들면 무표정도 표정이기 때문에 인간은 얼굴 가죽을 벗겨내지 않는 한 표정에서 초월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므로 좋은 표정을 지니는 것이 미덕이 됩니다. 마음 즉 의식을 없애지 않는 한 욕망이라는 것을 초월할 수 없고 욕망 즉 의욕이 없는 상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쉽게 간과되는 영역은 인간의 사상입니다. 모든 본질상 부정적인 관념은 이러한 원칙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즉 거짓이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당신이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거나 신이 어떠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당신의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즉 상상의 소산에 불과한 것으로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주장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관념이라는 지적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관념이기 때문에 진실이 될 수 없다는 주장 자체가 법칙에 벗어나는 일종의 궤변입니다. 그렇다는 주장 자체도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부정적인 관념에 불과한 것이지요. 인간은 관념이라는 것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단지 올바른 관념을 갖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불가지론이나 회의론은 이와 같은 자가당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점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없으면 인간은 온갖 모순된 거짓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뭔가 초월해 보려는 허황된 노력을 하는 것보다 겸허하게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주어진 선천적인 성향들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자유와 행복을 영속적으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