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있어서 범주란 더 이상 풀이되지 않는 개념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입력된 개념이지요. 그것으로 인해 언어활동이 가능합니다.
언어에 있어 범주와 같은 것이 논리에 있어서는 사유법칙입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이 그것이 맞다고 느껴지는 지적감각이지요. 존재 혹은 유(有)가 무엇인지 풀이될 수 없는 것처럼 “a는 a이다.”와 같은 명제가 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이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 없지요. 그 명제가 옳다고 느껴지는 감각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런 기능을 바탕으로 인간은 논리가 가능합니다.
이를 사유법칙이라 합니다.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 이유율의 네 가지가 있지요. 이유율에는
“존재나 행동에는 목적이 있다.”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왜 목적이 있어야 하는지는 설명이 안 되죠.
물리에서 중력이 왜 그렇게 존재하는지 그 원인을 설명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설명 못한다고 해서 중력이 없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목적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 못한다고 해서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중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 못한다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반드시 그로 인한 충격을 입듯이 이 사유법칙을 무시하고 사고하여 얻은 결과는 인간의 삶에 해로운 영향을 미칩니다.
진화론이 그 대표적이죠. 진화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지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목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죠. 사유법칙을 거스르는 주장이죠. 물론 거짓이고 무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목적을 알고 그 목적과 일치하게 생각하고 언행하면 필연적으로 그 목적을 성취하게 됩니다.
목적이란 도달하고자 하는 혹은 도달되는 결과 혹은 최종결과라고 할 때 현재의 인생의 결과는 죽음 즉 허무이기 때문에 그 목적은 부정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죽기 위해서 사는가?”라는 말이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결과를 겪는 원인은 사유법칙의 어김입니다.
사유법칙을 제대로 아는 것이 삶에 얼마나 큰 유익을 주는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