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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성

by 법칙전달자

합리성


합리성은 인간 누구나가 지녀야 할 특성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치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것이죠. 이치 혹은 이(理)는 역시 범주 혹은 준범주로서 풀이되지 않으며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것으로서 성질 혹은 성(性)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성, 이해, 도리, 법리, 조리, 논리, 물리, 심리 등등 매우 많은 용어에 이 개념이 들어있죠. 특히 논리는 이치적인 생각의 전개라고 할 수 있으며 모든 학문이 지닌 기본적인 요소이죠.


인간은 구체적인 물질이나 물체가 지닌 어떤 물리적인 성질 즉 이치에 대해서는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그것을 파악하려 하죠. 그것에 없는 성질을 있다고 생각하거나 있는 성질을 간과한 상태에서 그것을 다루려고 하면 오류가 생겨 문제를 발생시키죠. 이치에 부합되지 않게 혹은 부조리하게 대응한 결과이죠.


그런데 대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인간이 임의로 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모든 24시간의 하루는 동일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 즉 날들이 지닌 그 자체로서의 가치와 일치한 생각일 수 있죠. 그러나 사람에 따라 특정한 날에 특정한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귀빠진 날 혹은 손없는 날 등등의 표현이 있는 것입니다. 특정 식품을 부정스러운 것으로 여겨 먹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죠.


또한 자신의 몸을 때리거나 하는 방법으로 학대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을 하지 않거나 금식하는 등 금욕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경우들이 있죠.


또 어떤 이유에서 의식상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고 규정으로 정하여 사람들로 따르도록 강제하는 경우들도 있죠.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인간의 의식이 계몽되어 합리성을 추구하게 되었을 때 이상의 것들이 비합리적이거나 미신적인 것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러한 것들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죠.


바로 성서는 그런 점들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룹니다. 더 이상 할례를 받거나 어떤 날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어떤 음식을 부정스럽게 여기는 등의 모든 육적인 물질적인, 인간이 자의적으로 부여한 의식에서 구속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한 것이죠. 합리성을 띄게 됨에 따라 엄청난 자유를 얻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자유를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받을 정도였죠.


사도바울은 이와 같은 합리성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라고 권장하였죠. 그런데 합리적이라고 번역된 그리스 원어는 양보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의 의식이 합리적이 되는 것은 그에게 진정한 지유를 가져다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이나 구습에 젖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람들의 자유가 그들에게 충격적이거나 실망스럽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될 수 있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런 경우에 그러한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런 사람의 비합리성을 수용하고 그에 맞추어 주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즉 따지지 말고 양보하라는 것이죠. 합리성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비양심적이거나 심지어 죄를 짓는 것 같은 압박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정한 음식으로 여기고 있는 음식을 누군가가 먹고 있는 것을 보면 충격을 받고 실족하게 될 수 있는데 사도바울은 그런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한 것이죠.


성서는 결코 인간의 행복을 제한하거나 금욕적인 삶을 권고하지 않습니다. 먹는 것에 대한 성서의 원칙은 "만족할 만큼"이며 술에 대해서도 다양한 술들을 여호와의 절기에서 마시며 즐기라고 명령조로 말하고 있는 정도이죠. 예수도 포도주와 친한 분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주를 즐긴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죠. 배우자와의 성적인 즐거움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묘사하면서 황홀경을 누리라고 하는 것이죠. 인간이 풍요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창조주가 행복하도록 넣어주신 본능이고 그분은 그것을 흡족히 충족시켜 줄 것임을 약속하고 있죠.


이러한 성서의 사상은 많이 왜곡되어 있는데 기독교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에 없는 것을 너무나 많이 규정으로, 교리로 만들어 그것이 성서에 근거한 것처럼 가르쳐왔기 때문이죠.


이러한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지금도 합리적이 되어 사실상 누구보다 큰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을 위해 지금은 그 자유를 만끽하지 않죠. 합리성이란 합리적이지 않음에 대한 양보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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