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성서에는 많은 동물들을 비유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양은 방어를 위한 아무런 두드러진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토끼만 하더라도 예리한 청력과 시력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느껴지면 긴 뒷다리를 이용하여 부리나케 달아나죠. 큰 몸집이나 빠른 다리, 위협적인 뿔 등 다른 초식동물들은 대개 의지할 만한 기능이나 수단을 가진 경우들이 많지만 목축용 양인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은 목동에게 전적으로 순종적이어서 그것들은 끈으로 묶어서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죠. 반면에 염소는 제멋대로이고 고집이 센지라 끈으로 묶어서 끌고 다니죠.
구원받을 사람의 상징으로 양이, 멸망받을 사람들에 대해서는 염소가 사용되죠. 예수 자신도 어린양에 비유되죠.
양은 순종적이고 외부의 위협에 대해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에 의존하여 방어하려 하지 않고 전적으로 목자의 지시에 따르죠. 예수는 어린양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목자에 비유되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음성은 천국복음 즉 하늘왕국의 좋은 소식이죠. 그분은 창조주의 말씀을 온전히 순수하게 전하였죠. 사견을 전혀 개입시키지 않았습니다.
인류 중 양과 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전해져 오는 메시지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보지도 않고 부정적으로 판단해 버리는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보통 세상에서 교육받은 것에 영향을 받아 그렇게 하는 것이죠. 또한 많은 사람들은 거짓 목자들 즉 순수하게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철학적으로 만들어낸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그렇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염소로 분류되죠.
양으로 구분되는 사람은 영생에, 염소로 구분되는 사람은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죠. (마 25:46)
성서의 이와 같은 메시지는 특히 오늘날의 개개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적용되기 때문이죠. 예수는 왕으로 즉위하여 현재의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분류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기 때문이죠.
요구되는 것은 증거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점도 증거가 분명하여 그것을 살펴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다고 확신하게 되죠. 그것은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지식에 근거한 확신이죠.
성서의 메시지도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지성인이 조사해보기만 하면 확신을 가지게 되는 그런 것이죠.
이 글을 보는 분 개개인도 그 점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까지 진리를 거스르는 면에 있어서 고집스러운 염소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염소와 같이 창조주의 법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왔죠.
그렇게 하여 세상이 정말로 진정한 평화와 자유 그리고 행복이 넘치는 곳이 되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지구는 여러 가지 문제로 중병에 시달리고 있고 진정한 해결책이란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반면에 양과 같은 특성과 태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소식을 받아들이고 조사하여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하고 예수가 통치자인 하느님의 왕국에 희망을 두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