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도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하얀 바둑돌이 하나 있다고 하죠. 비교적 단순하게 생겼죠. 그것에는 어떤 측면들이 있을까요?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모양과 색일 것입니다. 흰색이고 원반모양이라 할 수 있겠죠. 색이 단일하고 모양이 단순하니 표현하기 용이해서 좋죠. 그리고 크기; 지름이 얼마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두께 정도를 덧붙일 필요도 있겠죠.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무게 혹은 질량이라는 측면이 있고 크기와 중복되지만 부피가 있겠죠. 그리고 밀도 혹은 비중이 있을 것이고요. 경도, 탄력성, 전기전도성, 열전도성, 비열, 전성, 연성, 제작 연월일, 용도, 수명, 순물질인지 혼합물인지 여부, 조성물질의 종류, 녹는점, 수용성......
있을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측면 중 생각나는 것 일부를 적은 것이죠.
보이는 사물인 경우 반드시 어떤 모양을 띄고 있죠. 그런데 왜 그래야 합니까?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물체는 모양이라는 측면이 있는 건지 당연한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이상스럽기도 한 것입니다. 어쨌든 그것은 감각되는 아니 시각 되는 물체의 속성이죠. 눈에 보이는 사물은 색도 있고 크기도 있죠. 그런 측면이 왜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데 그렇게 주어져 있다는 것은 압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의 그 구성물질들은 모두 원자로 되어 있는데 인간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전자 한알도 만들 수 없죠. 그러나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그러하죠. 일부는 신이 만들어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타이어도 천사가 만든 것은 없죠.
그런데 보이는 것이고 모양과 색, 크기가 있고 움직이는 어떤 것이라 해도 질량이나 다른 특성들이 전혀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우선 인간이 보는 것은 두 가지가 있죠. 뇌로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 꿈같은 것은 뇌로 보죠. 꼭 꿈이 아니더라도 당사자의 뇌에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도 특정 측면만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림이나 영상 그리고 거울에 보이는 것들이 그것이죠. 그것들은 질량도 없고 돈이라도 사용할 수 없으며 벽돌이라도 집 짓는데 쓸 수 없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전혀 먹을 수 없죠. 당연한 것 같지만 신기하기 짝이 없기도 합니다. 거울 속에 보이는 사람에게는 밥을 주려고도 옷을 입히려고 할 필요도 없죠. 틀림없이 사람과 똑같은 형상인데요, 영상 속에서 가수가 하루 종일 노래 부르게 해도 그에게 수고했다든지 감사하다든지와 같은 말을 전혀 하지 않고도 미안함을 느낄 필요가 없죠. 지극히 당연한데 신기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거울 속에 마구 뛰어다니는 개는 동물인가요, 아닌가요?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만 성적입니다. 화투놀이를 해서 필뚝 맞기를 해도 누나 손목을 잡고 때리는 것과 형 손목을 잡고 때리는 것은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할마버지와 할머니, 남동생과 여동생이 느낌이 다르죠. 가족끼리도 그런데 타인이면 더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동물인 경우 개나 고양이도 얼른 암수가 구별이 안되죠. 대개 동일한 정도로 개라고 느낍니다. 동물 측에서도 인간과 접할 때 인간이 남녀에 대해 느낄 때처럼 조금이라도 그런 차이를 느끼는 감성이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렵죠.
인간이 뭔가 만들고자 할 때는 그 재료를 이루는 물질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는 모든 측면을 고안해야죠. 재료의 선택부터 구조, 디자인, 크기, 색, 등등 그 물건을 만들려는 목적에 맞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정해야 합니다. 세밀한 설계가 있어야 하고 하나의 요소도 빠트려서는 안 되죠. 그 모든 측면을 고안해야 하고 그에 따라 만들어야 하죠. 설계와 제작이 온전할수록 훌륭한 물건이 창조되죠.
만물이 지니고 있는 모든 특성들은 우연히 그렇게 주어진 것이고 그런 것들은 당연한 것일까요? 사물이 모양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것, 인간에게 성적인 감수성이 있다는 것: 맹목적으로 주어진 것일까요? 거울 속의 사람은 키는 있어도 몸무게는 없는 현상은 우연적인가요?
인간은 어떻게 보면 신비에 가득 찬 세상에서 삽니다. 주어짐에 대한 경건한 인식이 꼭 필요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