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물리와 심리

by 법칙전달자

물리와 심리


지구는 끊임없이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합니다. 그것이 등속직진운동이라면 관성에 의한 것이므로 힘을 더하지 않아도 그 영속적인 운동에 대해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궤도는 직선이 아니지요. 방향이 끊임없이 바뀌는 운동이므로 끊임없이 힘이 더해지는 운동이라고 생각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은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지구나 태양의 중력이 한정되어 있는데 수십억 년 전부터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공급된다는 것입니까? 지구의 질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요.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좀 다르죠. 지구는 공간 자체가 휘어져 있기 때문에 사실은 관성에 의해 등속직진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태양의 중력으로 휘어진 공간을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 에너지의 공급이 필요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공간의 휨 자체가 중력으로 인한 것이어서 중력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죠.


어떤 가정에 두 달에 공급되는 전기에너지는 한 달에 공급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할 때 우주가 지금처럼 2년 유지되는 데는 1년 유지되는 데 드는 에너지의 두 배가 어떤 근원에서 공급되어야 합니까? 모두가 우주 시초의 관성에 의해 그렇게 유지하는 것이라면 이 관성은 어떻게 유지되는 것입니까?


운석이 지구로 떨어질 때 일단 지구 쪽으로 움직였다면 지구가 중력이 없다면 관성에 의해 같은 속도로 지구를 향해 움직이겠죠. 그런데 지구의 중력은 끊임없이 작용하는 힘이죠. 그러므로 운석은 가속될 수밖에 없죠. 그러다 대기권으로 진입하면 공기의 저항 즉 중력과 반대방향으로 마찰력이 작용하고 그것은 운석의 속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그 마찰력도 점점 강해져 운석의 가속을 상쇄하여 결국은 다시 등속이 된다고 하고 대부분 마찰열로 인해 타서 소멸된다고 하는 것이죠. 관성과 중력, 마찰력, 등이 동시에 작용하고 관성도 일종의 힘으로 간주되어 관성력이라 표현되기도 하죠.


그런데 관성이나 중력은 우주 전체에 언제나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죠. 물론 우주에는 거시적 미시적 차원에서 다른 힘도 끊임없이 작용하죠. 관성 하나만 보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 묻고 있는 의식으로 관심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관성이나 힘이라는 것은 일종의 관념이라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죠. 관성이나 중력을 알게 된 것이 모두 언어를 통해서이죠. 그런데 관성의 근원이 무엇인지 왜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왜 알고 싶어 하는지 그 원인도 알고 싶어지고 알고 싶어 하는 원인의 원인을 또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까? 다음부터는 문장만 하나씩 더 추가되면서 같은 패턴이 반복되죠. 그리고 이 단락에서 관심사가 물리에서 심리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3차 함수를 미분하면 2차 함수가 되고 그걸 미분하면 1차 함수, 또 미분하면 상수가 되고 상수를 미분하면 0이 되고 그다음부터는 계속 영원히 미분 결과가 0이 되고 동일한 것으로 수렴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 직관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있죠. 그런 그것을 직관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역시 직관에 의해서라고 할 수밖에 없고 지금 이 기술(記述) 자체에 대해서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죠. 이러한 현상을 순환의 벽 혹은 한계의 법칙이라 하였습니다. 동일한 것으로 수렴되는 것이 진리이죠.


진리는 있다는 것이 진리이면 진리는 존재한다는 것이 진리라는 명제 또한 수렴 현상을 보이므로 진리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본질상 부정적인 내용은 그런 현상을 보이지 않죠.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흔히 범하는 자가당착이죠. 불가지론이나 회의주의는 거짓된 것이죠. 여기서 불가지론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지법칙과는 다른 것입니다. 불가지법칙의 핵심은 인간의 이성은 영적 진리를 스스로 찾아낼 수 없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은 언어적으로는 부정적인 표현이 있어도 본질상 그러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는 심리로 전이되고 심리는 다시 영리(靈理)로 전환되어 모든 것의 근원이 영적인 것임을 알 수 있죠.

이동의 원인은 관성이고 힘은 가속의 원인이죠. 그런데 이동이란 무엇이고 원인이란 무엇입니까? 이동에 대해서만 살펴보죠 이동을 움직임이라고 하는 것은 동의어나 유의어로 바꾼 것일 뿐 본질적 풀이는 아닙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위치가 변화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죠. 변화한다는 것은 '달라진다' 혹은 '다르게 된다'를 의미하죠.


위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르다'는 무엇입니까? '같지 않다'지요 그럼 '같다'는요? 더 설명이 안되죠. '다르지 않다'라고 밖에요. '않다'는요 역시 분석적이고 본질적 풀이가 되지 않죠. 범주에 해당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물질로 치면 원자에 해당되죠.


'움직이다'라는 비유적인 물질은 '위치가' '다르게' '되다'.라는 세 개의 원자의 결합 즉 범주의 결합으로 되어 있죠. 여기서'가, 게, 다'는 언어적 범주로서 이까지 포함하면 6개가 되지만 한국어 고유의 특징 때문이라 그냥 셋으로 보아도 됩니다.


범주는 인간의 뇌에 애초에 입력된 것으로 그 근원을 창조주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움직이다' 혹은 '이동'이 그러하다면 이동의 원인이라는 관성은 더욱 그러하겠죠.


인간은 근원을 알고 싶어 하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질문하죠. 물질의 본질을 캐려 하다가 아원자, 소립자 등의 양자를 알게 되었고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죠. 결국 물질의 본질을 알기 위해 무한히 성능이 좋은 현미경을 만들어 들여다보면 호기심에 벙쪄 있는 자기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는 유머도 있는 것이죠. 우주의 끝을 보려고 무한한 성능을 지닌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면 자신의 뒤통수가 보인다는 것이죠.


근래의 뇌과학 혹은 신경과학은 심리학과 양자학과도 밀접히 결합되어 있죠.


지혜를 향한 무한한 욕망,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전도서에는 창조주가 인간의 마음에 영원성을 넣어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죠.


"그분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게 만드셨다. 또 그들의 마음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두셨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참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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