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가 실제로 만족스러운가

by 법칙전달자

현재가 실제로 만족스러운가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염려 둥 과거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지 말고 영원한 현재를 즐기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소위 현재철학류가 있습니다. 모든 철학에는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죠. 그러나 왜곡된 면이 있다면 그로 인해 고통스러운 현재를 겪을 수 있으며 그러한 철학 자체에 그릇된 의도가 반영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갖지 말고 긍정적으로 적응하라는 강요가 깃든 것일 수 있죠.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의 악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지혜로운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으로 상상한 나머지 불필요한 심리적 고통이 가중되는 것도 어리석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실제 발생하는 일과 상상 속의 일을 구별하지 못하여 과거의 좋지 않은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거나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염려하는 일들을 리얼하게 상상한다면 그것이 실제 일어난 것과 같은 감정이 생기게 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고 하죠. 물론 건강에 해롭고 그것 때문에 몸져 알아 누울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죠. 가뜩이나 실제 상황도 안 좋은데 이미 지나갔거나 실제 발생하지도 않은 일로 고난이 가중되는 것이죠.


다소간 현재가 만족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지족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데 도움이 되고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의 현실이라는 것도 불안정한 것이죠. 매일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며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현실에 처한 사람들도 많죠. 아무리 철학적 사유나 명상에 몰입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죠. 우리 동료 중 누군가의 현실이 그러하다면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주에 그러한 좋지 않은 현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현실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달리 해결방법이 없거나 자기희생적으로 적극 돕겠다는 의사가 없으니 수동적인 방법을 해결책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일 수 있죠.


인간 의식에 관한 일은 의식의 창조주가 가장 질 알죠. 예레미아 29장 11,12절입니다.

‘내가 너희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여호와의 말이다.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려는 생각이니, 너희가 미래와 희망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나를 부르며 와서 나에게 기도할 것이고, 나는 너희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


현재철학은 결코 미래의 재앙이 현실이 되는 것을 피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그릇된 철학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곧 있을 대규모적인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현재를 잘못 대응하고 있는 인간 스스로의 악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것이죠. 그러나 참으로 영원히 만족스러운 현실을 즐길 그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죠. 그것이 창조주의 생각이기 때문이죠. 스스로를 신적인 존재로 여기고 명상 같은 것으로 진정한 평화를 실제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창조주를 의뢰하는 것이 그러한 평화가 현실이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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