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큼 산 것인가?

by 법칙전달자

살만큼 산 것인가?


현재 90대 중반인 한 철학자는 자신은 50세 이후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들의 세대보다 훨씬 오래 살며 예전에 장수의 표상이 되었던 환갑잔치는 더 이상 그렇지 않죠. 60은 예전에는 연로한 자로 존경받고 할아버지라고 하여 받들여 모셔지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그 점에 있어 너무나 다르게 되었습니다.


김형석교수는 60살까지는 철부지로 살았다고 했지만 이도 상대적인 것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에는 100살도 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저주받은 것이라는 말이 있고 5,000 전만 하더라도 보통 900살 이상 살았다고 하죠.


인간은 11세 경이면 추상적인 사고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다고 하고 14~18세 경에 지능에 있어서는 피크라고 하며 앙팡테러블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의 뇌의 역량은 무한하여 10대, 20대, 30대에 경이로운 업적을 이루는 경우들이 많죠. 하루에도 엄청난 것들을 생각할 수 있죠. 물론 시공간의 한계 때문에 책을 읽거나 하는 것은 제한이 있지만 단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룻밤에도 소위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죠. 그러함에 비추어 보면 60세 정도면 해볼만큼 다 해본 것이고 살만틈 산 것입니까?


고려장이라는 것을 하던 시대에도 있었고 중동의 유목민 중에도 부모가 나이가 들면 목축을 끌고 이동하는 와중에 며칠 먹을 식량을 남기고 버려두고 강을 건넌다고 하죠. 그는 자신이 부모에게 그러하였듯이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만큼 신체적으로도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될 만큼 문제가 많았던 것입니다.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밀이 있는 것이죠,


오늘날은 이점에 있어서도 현저히 다르죠. 약품과 식품, 의료시스템, 헬스 등등 노년 복지를 위한 각종 마련이 있어 80 후반이나 90대까지 편안하게 살 수는 있습니다. 요양원들도 잘 발달되어 있죠. 실버산업이라는 것도 번창하고 있죠. 통치자들의 나이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죠.


다 종교적 미신 같은 것을 버리고 과학에 의존하는 결과라고 하죠. 몇십 년 후에는 평균 수명이 90대 중반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과학을 기반으로 한 건강 의료 시스템의 혜택을 받는 것이죠. 과학이나 국가, 진화론이나 유물론 같은 철학이 더 지배적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기의 발달로 삶이 질도 현저히 높아졌죠. 인류의 미래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제시할 만도 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뉴에이지류 등의 사상 보급 등으로 해서 인류의 의식 수준이나 계몽의 정도가 이전 어느 때보다 높아져 인류는 혁명적인 시대의 전환기에 있다고도 합니다.


창조주 없이, 창조의식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입니까? 매체들을 사용하여 사람들이 그런 인식을 갖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약 6,000년간 그런 의식하에서 기울여 온 노력의 결과가 이 정도라면 어떻게 보면 이는 재앙과 같은 결과이며 저주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잠재력에 비해 너무 미미한 결과이며 부정적인 측면도 매우 많기 때문이니다. 인간이 욕을 하는 동물 즉 투덜거리는 동물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부정적인 측면들 때문에 그렇죠.


하늘왕국의 천년 통치는 곧 시작될 텐데 그 천년 통치의 결과와 지금의 상태를 비교해 보면 그 점은 명백해집니다. 각 나라는 간혹 있는 현명한 통치자의 통치지간에는 일시적인 부흥기를 누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권력은 세습되었고 영웅은 자주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그릇된 통치에 의해 나라들은 곧 잘 쇠망의 길을 걸었죠, 백성들의 삶이 파탄지경이 됨을 의미하였죠. 그럼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죠. 그 통치를 없애기 위한 전쟁요.


천년통치기간에는 통치자의 바뀜이 없습니다. 자질이 입증된 사람들의 일관성 있는 통치가 이루어지죠. 누적된 과학기술들은 그대로 전수되며 건설적인 쪽으로만 사용되죠. 피통치자들의 상태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병들지도 늙지도 않고 그들 중 자격 있는 일부는 행정관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부활된 모세나 아브라함도 그렇게 될 수 있죠. 성서 곳곳에는 그 통치의 개략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가 있죠.


지금 노년기를 예전에 비해 다소간 평화롭고 풍요롭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매체를 통해 갖게 하는 생각으로 자신을 가치관을 굳힐 때가 아닙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라는 권고를 따를 필요가 있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성서의 소식에 대해서요. (마태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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