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얼마나 행복한가는

by 법칙전달자

얼마나 행복한가는


얼마나 행복한 가는 우선 즐기려는 대상의 질에 달려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듣더라도 음질이 좋아야 하죠. 음식을 먹더라도 맛있는 음식 이어야죠. 이성과 데이트를 하더라도 상대의 외모나 인격의 질이 높아야죠.


또한 즐기는 자신의 감수성, 감각기능이 민감해야죠. 음식이 아무리 훌륭해도 맛을 못 느낀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죠. 데이트 상대가 아무리 훌륭하면 뭐 합니까? 자신이 전혀 아닌데.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우면 뭘 합니까? 잘 보지 못하는데.


저도 지금은 엄청 즐겨 듣는 노래를 처음 누군가에게 추천받았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귀가 열리질 않아 들어보라고 하니 마지못해 듣는 정도였습니다. 그 음악에 대해 행복을 느끼기는커녕이었습니다.


강사가 아무리 유능해도 이해하지 못하면 소음으로 들리죠. 아무리 큰 기쁨과 유익을 줄 수 있는 첵도 이해 못 하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뿐이죠.


정리하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즐기려는 대상의 질과 자신의 감수성이나 심미안의 발달정도나 그 상태, 자신의 감각기능의 성능이나 감성의 질이나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죠. 의식 수준이나 지능 혹은 지성의 수준에도 달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머리가 좋아야 더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어찌 보면 더 중요한 면을 지적하려 합니다.


맛에는 달고 쓰고 짠 것과 같은 화학적인 맛이 있고 바삭바삭한지 물컹물컹한지 딱딱한지와 같은 물리적인 맛이 있고 누구와 어떤 상태에서 먹느냐 하는 사회적인 맛이 있다고 합니다. 심리적인 맛이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편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먹으면 더 맛있는 것이죠. 혼자서 무슨 맛으로 먹어 하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 싫은 사람과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먹는 경우 모래알 씹는 것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단순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몇천 원 혹은 몇만 원어치 소박한 안주를 사놓고 깔깔거리며 맛있게 먹는 경우가 있고 몇 백만 원짜리 고급음식을 상위에 잔뜩 차려 놓고도 서로 근심스러운 표정과 심각한 얼굴을 하면서 몇 번 집적 데다가 젓가락 놓고 대부분의 음식을 남기고 자리를 뜨기도 하는 것입니다.


음악을 감상하더라도 부득이하게 싫은 사람과 마지못해 함께 앉아서 듣는 것의 즐거움과 연인과 밀착해 앉아 서로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그렇죠. 함께 있으면 설레는 사람과 손잡고 다니며 그렇게 하는 것과 앙숙과 함께 인상을 찌푸리며 걸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천지 차이인 것이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과 관련하여 서두에 언급한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 사물에 대한 사랑 특히 창조주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더 근원적으로는 무엇에 대한 사랑보다도 그 사람이 사랑인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하죠. 또한 성서에 행복한 하느님이라는 표현도 여러 번 나옵니다. 사랑으로 존재하는 존재가 되어야죠. 그러면 그 자체가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죠.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그것이 무엇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안다면 삶의 방식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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