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알면 시간낭비

by 법칙전달자

본질을 알면 시간낭비


여기서 본질이란 관련된 모든 본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적인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죠. 어떤 소설이 통속적인 연예소설이라고 하면 바로 그 점이 그 책의 내용에 대한 그러한 본질이죠. 사람에 따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될 수 있죠. 그걸 읽는 것이 시간낭비라 판단하는 것이고 물론 현명한 판단일 것입니다.


그러한 본질은 명성이나 관련된 수치의 정도 하고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저자의 유명세나 발행부수와 같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질이 높으니 그런 평가를 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평가에 있어 그런 유혹을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인 중에서 뽕짝, 트로트를 엄청 싫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자신의 친구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악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했다가 그 음악이 좋다는 그의 친구들과 대판 싸우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본질로 호불호를 정한 경우이죠. 속으로는 나하고 음악성향이 비슷한 면이 있구나 하고 흐뭇하게 느끼기도 했지만요.


성서에는 "당신의 말씀의 본질은 진리입니다." "본질상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다"와 같은 표현들이 나오죠.


인간의 지적 기능 중에 통찰력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추리력과 함께 지능의 2대 근간을 이루는 것이죠.


물론 통찰이란 정확한 통찰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통찰력에는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이라는 것이 있죠. 통찰력 중에서도 중추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통찰력이 단지 심리학적인 지능개발 훈련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통찰력은 오로지 창조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적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이요. 이 통찰력은 눈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통찰력이 없으면 영적으로는 맹인인 것이죠. 세상의 배후통제자가 인간의 눈을 멀게 하여 그렇게 되게 한다는 것이죠. (고후 4:4)


사람들이 시간낭비일 뿐 아니라 해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하는 원인이죠. 그것이 귀를 즐겁게 하고 보기에 좋은 것으로 느끼는 것이죠.


사람들의 인생길은 각기 다르고 갈팡질팡 하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른다고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두 통찰력이 없어 보지 못하고 아닌 것을 선택하는 것이죠.


모든 인생길은 정도에서 벗어나 있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아닌 것입니다.


이점이 인간이 반드시 창조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지 의식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창조주와 합당한 개인적인 관계를 가져야죠. 그것이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숭배'의 본질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본능적인 숭배욕에 따라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뭔가를 숭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숭배욕을 충족시키는 대상이 있는 것이죠. 상당수의 북한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외부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나타난다고 하죠. 또한 배금주의라는 말은 돈을 숭배한다는 의미이고 어떤 사람이 내 주먹을 믿는다고 하면 그것은 일종의 무력에 대한 숭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주의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그것에 대한 숭배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의 패배 시 황제폐하 만세라고 외치면서 할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죠.


결론은 창조주와의 합당한 관계와 태도를 통해 그것을 만족시키지 않는 사람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 역시 통찰력의 결과이고 이러한 통찰력은 전적으로 창조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헛된 시간낭비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하는 것이죠.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묵상해 보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면 그러한 통찰력을 얻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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