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위대성은
'위대'자체가 본성적 개념이라 사람들은 그것을 추구하려 하며 예술과 문학에서도 주요 소재로 다룹니다.
사르트르는 위대한 사람은 하나의 정부와 같다고 한 적이 있죠. 그는 다른 면에서도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하였으므로 이 말 역시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몇십 년 만에 하나의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위대성을 지닐 수 있다? 물론 상대적인 견지이긴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느낀 것이죠.
성서에도 신과 같은 인간들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고 스스로 신적 존재로 높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숭배하도록 한 왕들도 있었죠.
이슬람국가에 속하지 않더라도 알라는 위대하다는 말은 귀에 익숙할 수 있습니다.
예수도 위대한 사람이 되려 함에 대해 비난하기보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라고 권하기까지 하였죠. 꼴찌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한 것이죠.
위대한 사람은 하나의 정부와 같다는 말은 성서의 주요 개념 하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성서에서 천국 혹은 하늘왕국이라고 하는 것은 정부를 의미하죠. 그리고 다음의 구절은 특별한 위미를 갖습니다.
계시록 1장 6절입니다. 우리가 왕국과 자신의 하느님 아버지의 제사장이 되게 해 주신 분에게 영광과 위력이 영원히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왕국 즉 정부라고 한 것이죠, 뒤에 나오는 제사장이 사람인 것처럼 정부도 사람이죠.
즉 사람을 정부라고 한 것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의 본질이죠. 천당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사람이 정부가 되는 것이죠. 그들은 인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창조주의 관점에서 위대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말처럼 스스로 종이 되어 자기희생적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했기 때문이죠.
네부카드네자르나 칭기즈칸처럼 위대하게 받들어졌던 인물들은 사실은 서슴지 않고 대량살상을 주도한 사람이고 호령하고 군림한 사람들이죠.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역사물에서 그리고 있는 소위 위대한 주인공들도 대부분 그러하죠.
성서에서 정부 즉 통치자가 될 만큼 위대한 사람들은 완전 그 반대죠. 예수가 대표적이죠. 그들은 기꺼이 창조주의 섬기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통치자가 될 수 있는 지혜와 자격을 성령으로 부여받았죠. 어부나 목수출신이었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기록한 성서를 읽어보면 그 점을 확연히 알 수 있죠.
천년 통치는 그러한 사람들로 구성된 정부에 의해 이루어지죠.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스스로 꼴찌가 되는 자세로 동료인간을 대해야 하는 것이죠. 사랑과 존중심으로요.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몸을 굽혀 지극정성으로 돌보죠. 심지어 노예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동료인간에게 그런 태도로 대해야죠. 인간이 서로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뿐입니다. 사랑과 조화를 이루는 모든 것이죠.
뭔가 일을 하더라도 서로를 기쁘게 하려는 동기에서죠. 일을 한다는 것은 뭔가를 생산한다거나 봉사하는 것을 의미하죠,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동료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죠. 왜 지혜와 능력과 덕을 향상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마찬가지이죠.
큰 사람이 되려 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이죠. 위가 되려 하고 첫째가 되려 하는 것이 잘못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