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창조주는 어떻게 있게 되었는가?

by 법칙전달자

창조주는 어떻게 있게 되었는가?


물론 이 질문에 답하려면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말을 하는 순간 도가 깨진다는 말도 있죠. 그런데 그러한 생각 자체가 말로 표현된 것이기에 논리적으로는 일종의 자기 파괴죠.


이에 대한 설명 피치 못하게 역시 언어로, 사변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색채가 풍기는 방식으로 기술해야 하는데 이미 고래의 뛰어난 사상가들이 답을 포기하고 인간이 알 수 없는 의문이라고 확정 지은 바 있고 저도 그런 취지의 글을 여러 번 올린 적이 있습니다. 소위 불가지법칙에 해당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모든 내용이 언어로 기술되죠. 언어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자가당착입니다. 그 부정적인 생각 또한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 자체가 불완전성을 지닌 언어 중 하나인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죠. 언어가 지닌 불완전함 때문에도 관련 진리가 온전히 표현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나 사고 자체에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생각을 완고하게 갖는 것도 겸허하지 못한 태도일 수 있고 필수적 진리를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겸허하다면 언어와 그와 관련된 의식의 근원인 창조주의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언명에 대해 주제넘은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이런 면에서 쉽게 가자당착적인 생각에 빠져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하죠.


창조주의 언명이라 하더라도 그 원래의 언어가 아니라 번역되는 과정에서 의미변화가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온전한 진리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에 빠져서도 안 되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인간은 확신을 가지고 언어를, 자국어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긍정법칙과 적극법칙에 의해서이기도 하죠.


'언어'로 번역된 로고스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고 창조주의 수석대변인으로서 예수를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합니다. 논리, 이성, 원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죠. 그 변형인 logy나 ics는 영어로 학문을 나타내는 단어의 어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또 로고스로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하죠. 말하자면 언어로 만물을 만든 것이죠.

인간도 언어를 사용하여 창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언어로 된 말이나 글을 보거나 들으면 뇌에 뉴런의 가지치기가 형성되죠. 언어를 사용하기에 따라 상대에게 악감정이 생기게 할 수 있고 해로운 화합물을 분비케 하여 몸에 병이 걸리게 할 수 있고 화병으로 죽게 할 수 있죠. 언어로 생산적인 혹은 파괴적인 결과들을 산출할 수 있는 것이죠. 인간의 조직에서도 글이나 말로 모든 행동을 유발하죠. 그 언어에 따라 모든 행동을 하여 생산하거나 파괴하는 결과를 낳죠. 언사가 만사라고 하는 것이죠.


인간에게 의식되는 만물은 인간의 의식 혹은 언어에 잡혀 있는 것이죠. 창조주가 하는 모든 활동의 매개는 성령이라고 알려줍니다. 인간의 활동처럼 인체의 일부를 움직이고 대상과 접촉하여 일을 하는 것과 차이가 있죠. 영이란 발휘되고 전달되는 에너지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 전체에 가득 차 그것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말을 듣고 어떤 분은 범신론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와 일치한 것은 아닙니다.


그 영은 성서의 표현에 의하면 모든 것 위에 안에 그리고 통하여 존재하는 것이죠. 모든 것의 상태를 전달하고 또 그것이 작동되게 발휘되죠. 이는 양자역학의 연구결과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사소한 모래알 하나도, 전자나 광자 알갱이 하나도 그것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강한 호기심이 생기기는 하지만 알 수는 없죠. 그것을 과학적인 방법의 여러 가설적인 설명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언어의 사변적인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죠.


만물의 존재나 현상 중에는 인간에 의해 밝혀진 것이 있고 아직 신비인 것 즉 감추어진 것이 있죠.

"감추어진 것은 우리 하느님 여호와의 것이지만, 밝혀진 것은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후손의 것입니다." 신명기의 이 말은 의미심장하죠. 인간은 계속 밝혀낼 것이고 한 번 그렇게 된 것은 그 후로 영원히 인간의 것이 되죠. 인간이 활용하여 부와 행복을 증진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이죠. 인간이 밝혀낸 것은 무한을 향해 영원히 누적되어 갈 것입니다.


글 제목의 질문을 갖는 것은 부조리한 것도 주제넘은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이고 그렇다면 그런 의문, 그런 의식, 그런 언어가 떠오르게 한 것은 창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득한 신비가 될 것입니다만 지금 현재로서는 그런 의문을 떨림과 외경의 감정으로 관조하거나 음미하면서 관련 의문에 대해 직접 기도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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