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불안

by 법칙전달자

불안


내외면의 모든 대상을 철저하게 무감정하게, 철저하게 순수하게 이성적으로만 사유한다고 하죠. 스스로 그러한 인공지능으로 간주한다든지 하면서요. 극단적인 사실주의적 방식이죠. 이론적으로 가능해 보이고 실제로도 무리 없이 시도될 수 있겠죠. 인간이 의식 혹은 영혼에서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죠. 그런데 무표정도 일정의 표정이라고 하고 무감정도 일종의 감정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할 수 없는 것이지만요.


아무튼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다고 해도 자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인간인 이상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런 인간로버트는 영화 같은 상상물에는 나올 수 있죠. 10대 때의 한순간에는 그런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고 또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태는 무감정이라기보다 삭막하고 피폐하거나 비인간적이고 무정하고 냉혈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느껴지기도 했고 주변에서 그런 식으로 비난받기도 하였습니다.


무감정은 평화롭기도 하고 해탈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한 참 지나서 어떤 사람이 첨단 디자인의 비싼 옷을 산다든지 흥청망청 쇼핑을 하는 것은 그의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기보다 불안이 원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죠.


불안은 대표적인 부정적 감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안한 경우에 그 원인을 알아내고 능동적이고 생산적으로 대처하거나 행동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어떤 스트레스처럼 유익하게 작용하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글은 불안에 대한 더 근원적인 사상을 전달합니다. 일에 실패하거나 타인에게 잘못 보이거나 부정적으로 평가되거나 벌을 받거나 해를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그런 보통의 불안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이나 경제에 대한 염려로 인한 불안에 대해서도 아니고 또 특별한 이유 없이 생기는 불안장애와 같은 병적인 현상에 대해 다루려는 것도 아닙니다. 더 원초적인 불안에 대해서이죠. 최근에는 오히려 이런 불안을 느끼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것은 허무에 뿌리를 둔 불안입니다.


그런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은 원리적으로 타인을 위해 진정으로 유익한 일을 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영안이나 혜안, 통찰력을 갖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원리에 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그러한 불안에서 근원적으로 벗어나는 방법은 창조주와의 개인적인 관계의 확립을 통해 생명의 영속성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말씀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조직하였으며 그 조직과 연합한 사람들만이 그렇게 되는 것이 가능했죠. 즉 그분이 인도하는 양무리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죠.


허무에 기인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그것을 의식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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