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으로의 초대
오늘의 숲으로의 산책 중 난생처음 보는 경험을 하였는데 그것은 땅의 무지개입니다. 나무의 밑동과 그와 연이은 땅에 선명한 무지개가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매우 신기하여 혹시 인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가 하여 가까이 가보았더니 빛이 몽에 가려지는 순간 무지개는 없어졌습니다.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무지개가 없어지는 10여 분간을 생생하게 감상하였죠. 세상에 기이한 현상은 한들이 아니겠습니다만 가까이서 직접 체험해 본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할 수 있습니다.
무지개는 창조주께서 인류를 홍수로 멸망한 후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징표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지구의 환경이 지금과 달랐으므로 무지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노어의 홍수와 같은 멸망 그보다 더 근본적인 멸망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고 베드로가 이를 자세히 묘사하였죠. 물에 의한 멸망은 아니지만 상징적인 불에 의한 멸망이죠. 현재의 땅과 하늘에 대한 멸망인데 성서에서 땅은 악한 인간 세상, 하늘은 인간 정부들을 상징하죠. 그것들이 요소가 철저히 분해되고 소멸되는 방식으로 멸망된 후 새로운 인간 세상과 정부인 새 땅과 새 하늘로 교체되죠.
오늘날 상징적인 방주에 탑승한 사람들만 구출되어 새 땅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죠.
이제 초가을입니다. 맑고 드높은 하늘과 시원한 숲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은 인간 생명으로 인한 것입니다. 창조주는 인간에게 생명뿐 이나라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너무나 멋진 것들을 함께 선물하였죠. 그것도 풍성하게요. 감사함을 느낄 때 행복은 배가 됩니다. 찬양이 자연스레 우러나오죠.
일부 사람들은 신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여 없으면 만들어야 된다고 까지 하는 정도이죠. 그런데 있긴 있는데 처음에 만물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알아서 만물이 운영되게 해 놓고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이 있고 만물에 깃들어 있는 법칙이나 에너지 자체가 신이라는 범신론도 있죠. 기독교적인 유신론도 있고 진화론자들의 무신론도 있죠.
물론 모두가 거짓입니다. 나는 유신론자이고 예수 믿는다는 기독교인들도 전혀 예외 없이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 론이나 교는 진리일 수 없는 것이죠.
예수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후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라는 목소리가 들렸죠. 그런 경우는 그 뒤로 한 번 더 있었습니다. 범신론이나 이신론이 맞는다면 그런 현상은 없어야 하죠.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꾸며낸 얘기라고 몰아붙여야 하는 것이죠.
실상은 성서를 가장 믿지 않는 무리는 기독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성서적인 사상을 주된 교리로 삼고 있으며 그들의 행실 역시 비성서적이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멸망의 일 순위로 정해져 있죠.
예수는 지금 천년통치를 시작하기 위해 즉위해 있는 지구의 통치자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 즉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왕국의 좋은 소식에 순종하여 비유적인 방주에 타고 있죠.
초대를 발하는 활동을 계속하면서요.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올 수 없습니다.(요한 14:6)
예수를 실제적인 통치자로 인식하는 사람들만 생명을 누릴 수 있죠. 성서에 너무 명백히 기술되어 있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악한 세상에 희망을 두어 그것과 함께 생명을 잃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참 생명으로의 초대에 응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