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찔렸습니다.
'영'은 매우 다양한 용법으로 쓰이며 성서에만도 10가지 정도로 쓰입니다. 문맥에 따라 의미를 파악해야 하죠. '영혼' 혹은 '혼'보다 많은 용법으로 쓰입니다. 경우에 따라 영혼과 유의어 혹은 동의어로 쓰이거나 그것을 포괄한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언어의 미분화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영문화라는 것이 원시적이기 때문이죠. 아니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성서를 본격 통독하기 시작했는데 흥분되고 떨리고 황홀해서 성서를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그때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바짝 마른 스펀지가 갑자기 엄청난 양의 물을 흡수하는 것이라 할까요? 비어 있는 영혼의 심연에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와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소위 사상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 것이었습니다. 흑암에 빛이 비취는 것과 같았으며 한편으로는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진수성찬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씀이 내 발에 등불이라든지 송이꿀보다 더 달다는 취지의 표현은 이미 성서에 여러 번 나오죠.
또한 다음의 말씀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을 발휘하며 어떤 쌍날칼보다 더 날카로워, 영혼과 영을 그리고 관절과 그 골수를 분리하기까지 꿰찌르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히 4:12)
성구에 대한 해설은 생략합니다.
제 영혼은 말씀으로 찔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드러난 바와 같이 되었습니다.
'영'은 여러 의미로 쓰이는데 전자기기에 흐르는 전류와 같이 사람의 몸에 흐르는 생명력 혹은 생체에너지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호흡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죠.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물리적인 혹은 생리적인 에너지를 통합적으로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필수적인 어떤 기능을 의미합니다. 우선 필수적인 다른 기능들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신체적인 기능이죠. 겉으로 보이는 부분들과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모두 온전해야죠.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태어나죠. 다음으로는 지적인 기능입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말을 알아듣고 또 할 수 있어야죠. 필수이죠. 또한 정서적 기능이 있습니다.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기능이죠.
그리고 바로 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악한 영으로 틀 잡혀 있죠. 세상에는 머리 좋은 사람도 많고 노래 잘 부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죠. it산업이나 반도체 산업의 강국이고 한류문화로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죠. 잘하는 스포츠들도 많이 있죠.
그러나 한국사람들뿐 아니라 세계 전역의 사람들에게 영은 빠져 있습니다. 어떤 극단적인 시각으로 보면 좀비나 강시가 연상되는 정도입니다.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그들이 대중에 의해 뽑혔기 때문에 대중들도 한 통속으로 그러합니다. 개돼지라는 말이 있는 것이죠. 사실 너무 역겹다고 할 수 있는 면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마치 그게 정상적인 것처럼 그들의 언행이 매스컴의 주된 부분으로 방영이 되죠. 물론 이 글을 보는 분 대부분도 동의하지 않겠지만 결코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두드러진다는 것은 소위 그들이 인민들을 대표하는 존재들이라고 해서 매스컴을 많이 타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하죠. 영이 없는 인간들의 어그러지고 뒤틀린 역한 모습들이 역력하게 나타나는데 그런 영안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낄지 모르죠. 최대한 꾸민 가장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도 그러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가장 역겨운 쓰레기들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이 많죠. 풍자유머도 많고요. 저만 유별나게 가지고 있는 편파적이거나 삐뚤어진 시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평가는 머릿수 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행복합니다, 악한 자의 조언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빈정거리는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여호와의 법을 좋아하며 밤낮으로 그분의 법을 낮은 소리로 읽는 사람.' 시편의 첫 구절이죠.
사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면서 상대에 대해 빈정거리는 말을 하는 데는 으뜸인 사람들이죠. 영이 없는 사람들의 대표들이고 사실 정상적인 인간들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산상수훈의 첫마디는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행복하다"입니다.
시체는 음식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않죠. 이 세상은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시체는 그대로 놔두면 해를 끼치는 것이 되죠.
사람들은 영적 양식이라는 개념이 없죠. 필요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마태 4:4)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물론 경험을 해본 적은 있을 것입니다만 거절하고 지나간 것이죠. 눈앞에 보이는 돈, 이권, 권력, 쾌락을 추구하며 좀비같이 살아온 것입니다.
영이 없으니 그것이 찔릴 일도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