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편했으면

by 법칙전달자

얼마나 편했으면


창조주는 에스겔에게 인분에 불을 붙여 빵을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그런 식으로 더럽게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거부하였습니다. 창조주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우주의 최고주권자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인데 감히 토를 달어?라고 했을까요? 그분은 듣자마자. “좋다. 인분 대신에 쇠똥을 쓰도록 허락한다. 그것으로 빵을 구워라."라고 말씀하셨죠.


요나인 경우 니느웨에 대한 멸망의 예언을 전하라고 했는데 도망하다가 다시 오게 되어 예언을 했는데 예언대로 되지 않자 그분에게 화를 내며 항의를 했죠. 더구나 더위를 가려주던 식물이 말라 짜증이 나자 차라리 죽여달라고 죽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고 창조주에게 감정을 폭발했죠.


아브라함의 경우도 하느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한다고 하자 그곳에 의인이 50이 있어도 함께 멸망하시겠습니까? 에서 시작하여 45, 40, 30, 20, 10에 이르기까지 여섯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죠.


이 모든 일에서 창조주는 조금도 언짢아하거나 암시적으로라도 질책하지 않았죠. 즉각적으로 호응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그의 벗이라고 하였는데 사실 에스겔이나 요나나 아브라함인 경우 얼마나 편하게 느꼈으면 창조주에게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세속의 왕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인간이 하느님에 대해 생각할 때 일방적이고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올바른 결론에 이르지 못하죠. 범신론, 이신론, 유신론, 무신론 같은 사실상 몰라도 그만인 무익한 상충되는 론들을 산출할 뿐이죠.


인간이 합리적이고 겸허하다면 그분의 말씀이라고 전해지는 성서를 근거로 추리를 해야 합니다. 영적 추리의 기본이죠. 인간의 생각이 쉽게 주제넘거나 자가당착적인 성격의 사고에 자신도 모르게 빠지기 때문에 올바른 결론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우주의 최고 주권자인 창조주의 성품의 한 면에 대해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죠. 그리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라고 권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야고보 4:8)


여러 가지 이유에서 세계전역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한국도 높은 비율로 그렇다고 합니다. 북한을 탈출해 온 사람들을 보면 현재가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이 있다면 악착같이 살려고 하기도 하는 것이고 마릴린 몬로처럼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남은 여생의 삶이 부정적으로만 전망된다면 현재의 삶을 심리적으로 지탱하지 못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죠.


피조물이라는 의식을 갖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인생을 생각하고 삶을 살아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어떤 부정적 감정을 강하게 갖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까? 무엄하고 터무니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을 돌이켜 생명의 창조주가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강정이든 어떤 생각이든 마음껏 토로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십시오.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말이 왜곡된 것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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