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방치하다.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편견을 방치하다.
현재의 인간들은 편견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물론 저 역시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 차원에서 뿌리 깊이 자리 잡는 것이라 퇴치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현실적으로 저 같은 사람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편견은 방치하죠. 오히려 그것이 뻔히 편견인 줄 알면서 즐기기도 합니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남이야 어떻게 보든 저 자신에게 그냥 그렇게 놔 두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에게 전달하거나 공식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죠. 그리고 이런 글들은 한 잔 했을 때 쓰게됩니다.
저는 노래 잘 하는 여인들을 좋아하는데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서죠. 서열까지 정해져 있죠. 덩달아 전혀 누구인지 모르는 작곡가들도 존경하게 됩니다. 음악의 연출자들도요. 저에게는 이상세계의 단편들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게 되는 소재가 되거든요.
또한 여류 기사들도 좋아합니다. 원래 여자는 말 잘하고 노래 잘 부른다고 하지만 머리 쓰는 일은 주로 남자가 하는 일이라는 선입관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 수학을 잘 하거나 바둑을 잘 두는 여자들을 보면 신기한 것입니다. 그녀들에 대한 존경심은 편견에 기인한 것일 수 있지만 그 감정이 행복한데 어쩝니까?
아래는 쾨이강의 다리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행진곡입니다. 그런데 그 장면들이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남루한 군복과 떨어진 구두를 신고 행진하는 포로들의 표정을 보십시오. 어떻게 그런 순수하고 평화롭고 애틋한 표정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보기에 따라 모두 개성적인 미남들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6rjMyAkF828
영화니까 가능한 것이죠 연출자가 그런 복장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지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시나리오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기도 한 것일 것입니다. 저에게는 엄청나게 추리의 소재들이 많았습니다, 이상사회에 대해 매우 간접적으로요. 작가와 감독을 비롯한 연출자들에게 자연스런 존경이 생기는 것이죠. 물론 많은 편견이 깃들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로 방치하죠.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거든요.
거리에 나가보면 실제 사람들의 표정들을 볼 수 있죠. 가끔 전철을 타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전쟁포로들에 비할 바 없는 자유로운 상태이지요. 그러나 표정에 깃들여 있는 그들의 삶의 우환은 오히려 포로들의 그것보다 더 안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물론 편견이겠죠.
포로들은 더 이상 살인하지 않아도 되죠. 죽을 확률도 훨씬 적습니다. 그들은 다리를 건설하는 일을 충실히 해주면 그럭저럭 전장에서보다는 더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거라면 차라리 일찍 포로가 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죠. 영화화면상의 그 표정들은 꼭 거짓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상이기 때문에 시청자를 의식하여 큰 낭만을 곁들였겠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장에서도 포로가 되고 싶어하는 군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자유를 얻게 된다면 포로로서의 삶의 경험은 틀림없이 특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8절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에 포로들을 데려갔고, 사람들로 된 선물을 주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전쟁관련 장면들 뿐 만아니라 극적인 장면들에서의 꾸며진 면면들은 현실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상적인 생각들이 반영되어 있죠. 그런 이상적인 생각들을 리얼하게 하고 구체적으로 영상으로 표현한 모든 관련자들에게 행복한 존경심이 생기는 것은 편견인 줄 뻔히 알면서 방치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