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법칙, 항상의 법칙
있느냐 없느냐 많으냐 적으냐
변화의 법칙, 항상의 법칙
변화성과 항상성은 상충하지 않는, 만물을 지배하는 두 법칙이죠.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 달라지는 것과 바뀌어야 하는 것이 바뀌지 않는 것 모두 그 법칙을 위반하는 것이죠.
물론 자연의, 즉 만물의 변화성과 항상성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죠. 만물은 어떤 면에서는 끊임없이 변하며 심지어 모든 면에서 1초 전과 동일한 것은 없죠. 그러나 물이 물로서 지니고 있는 성질은 어제나 그제나 내일이나 덜해지는 것이나 더해지는 것이 조금도 없이 그대로이죠. 이 두 가지 상충되지 않는 면은 절대적으로 그러합니다. 변하는 것은 반드시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또한 절대적으로 그러하죠.
그러나 의식의 세계에서는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없는 것은 있게 하는 변화가 있어야 하고 불필요하거나 악한 것은 없애야 하는 변화가 있어야 하죠. 적은 것은 많게 해야 하고 약한 것은 강하게 해야 하는 것이죠.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은 죽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어떤 것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많으냐 적으냐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계셔? 는 유무와만 관련되어 있죠? 자식은?이라고 하면 그 다소도 관련이 있죠.
성서에서는 버리거나 변화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하고 있어야 하고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 있다고 알려주죠 발전하고 더해야 하는 것들도요.
변해야 하는 것은 주로 생각이나 인간성입니다. 사상이나 이념도 생각이지만 가치관도 생각에 속하죠. 과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음과 같이 하라고 권하고 있죠.
하지만 그처럼 나에게 이익이 되었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손실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의 탁월한 가치 때문에, 나는 참으로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깁니다. 그분을 위해 나는 모든 손실을 감수했고, 그 모든 것을 많은 쓰레기로 여깁니다.(빌립보 3:7,8) 여기서 쓰레기란 배설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쓰였죠. 세상에서 가치 있게 여겨는 부와 권력, 신분, 지위 같은 것들이죠.
또한 옛 인간성을 버리고 새인간성을 입으라고 하죠. 여기서 인간성 하면 우선 사랑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오늘날 남녀들 사이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더러운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상은 서로 간에 성적욕구, 즉 그와 관련된 배설욕을 충족시키려는 일시적인 것이죠. 자기 본위적으로 상대를 살피죠. 결국 서로 간에 화장실로 생각하는 것이죠.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건전한 도덕관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인 경우 소위 숫처녀나 숫총각은 거의 없게 되는 것이죠. 당연히 대상이 수시로 바뀌는 그러한 것이 되죠.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역겹죠.
그런데 건전한 생각을 가진 처녀 총각이 순수하게 영원한 배우자로서 탐색하기 위한 건전한 데이트를 하는 와중에 서로를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다면 이제는 그 사랑이 변할까 봐 두려운 것이 되죠. 영원한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다음과 같이 되기를 바라겠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히 13:8)
이기적이고 육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에서 혹은 철학적인 가치관에서 영적인 가치관으로, 그런 인간성에서 사랑의 인간성으로 바뀌었다면 이제 변하지 말아야죠.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게요.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처음보다 사정이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이죠. 개가 그 토한 것으로 돌아가 뒹군다고 하는 것이죠. (베후2:22)
유무와 관련해서는 의식에 숭배라는 것이 있고 그 대상이 창조주냐 하는 것과 참하느님의 조직과의 연합이라는 것이죠. 없다면 있게 하는 변화가 있어야 하고 그렇게 변화했다면 돌이키지 말아야죠.
다소와 관련해서는 영적자산인 진리의 지식을 계속 증가시켜 나가야죠. 영양이 밀집된 딱딱한 양식도 소화할 수 있게 영적 지각력과 소화력도 강화시켜 나가야 하고 의식 수준도 계속 높여가야죠.
변화성과 항상성에 해당되는 목록표를 만들어 쉽게 볼 수 있게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법칙들의 거스름을 지속하면 반드시 파멸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