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줄
사람이 그 심미안을 발전시킨 정도에 따라 자연은 인간에게 전율을 일으키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죠. 마음에 격한 탄식이 절로 나오게 하는 순간들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매우 다양하죠. 그중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부관계입니다. 현재 인간들은 부부관계에서 느끼는 본연의 행복을 사실상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영원히 살면서 부부간의 행복이란 질적으로 양적으로 나날이 풍성해지고 강렬해지는 것인데 사랑이나 지식에 있어서 터무니없이 부족한 지금의 풍토에서 결혼한 사람들이 그러한 행복을 느낄 리 없는 것입니다. 가장 건전한 경우라고 해봐야 기본적인 의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기껏해야 정 하나로 산다고 하는 정도이죠. 그밖에 가족관계나 사제지간, 친구관계 등등 다양한 인간관계가 있는데 각각 그 관계에 따른 공통적이거나 차이가 있는 그런 사회적인 행복이 있는 것이죠. 이런 모든 면에 있어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본연의 행복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인간관계가 많고 그들 통해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죠. 부부관계도 그 극단적인 부정적 양상인 이혼이 심지어 50%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것이죠.
진정한 친구 혹은 친구들과 몇 분 간이라도 대면해서 다과를 함께하는 그 행복은 평생 잊지 못하는 그런 강렬한 것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또 왜 그런 인간관계에서 원래 마련되어 있는 그런 본연의 행복들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단지 인간들 사이의 관계로만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각자가 창조주와 친밀한 아버지로서의 관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이를 삼겹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죠.
자연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창조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그러하듯이 인간관계도 그러하죠. 영적으로 연합되어 있는 관계야 말로 어떤 혈연이나 지연, 학연보다도 더 친밀하고 강하게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한 것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도 모든 세속적인 관계를 버리더라도 이와 같이 삼겹줄로 연합된 관계를 100배나 풍성하게 얻게 될 것을 약속한 바가 있죠.
이러한 축복된 관계는 이와 같은 글을 읽는 것으로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창조주와 개인적인 관계를 갖는 단계를 성서에서 알려주는 바에 따라 밟아 나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