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에 관한 메타
사람은 골몰하게 어떤 생각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면서 나름의 환상적인 세상을 그려볼 수 있죠. 그 무엇을 대상으로 놓고서도 사유할 수 있습니다. 당면한 현실의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이리저리 모색할 수 있고 특정한 주제에 대한 연설을 하거나 글을 쓰라는 과제를 받아 그 내용을 구상하는 사고를 할 수도 있고 작가로서 드라마나 소설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상상을 할 수도 있고 인생의 목적이나 만물의 섭리 같은 영적인 주제로 심오한 사유에 빠져들 수 있죠. 특정 동식물이나 항성이나 은하의 현상을 관찰하고 그 원인을 밝히는 연구를 할 수도 있고...... 인간의 생각의 성격이나 방향도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생각의 내용이나 그 내용에 대한 생각 자체를 대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죠.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고 생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요. 어떤 수학문제를 푸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지만 도대체 수학이란 무엇이며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왜 수학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죠.
뭔가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들을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의 의식 자체를 대상으로 놓고서도 소위 초월적인 혹은 메타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그러함 자체에 대해서도 즉 메타적인 생각 자체에 대해서도 메타 할 수 있는 것이죠.
결국은 순환의 벽에 부딪치게 되죠. 인간은 뭔가 알 수 있지만 알아도 벗어날 수 없음도 알 수 있는 것이죠.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는요. 중력의 본질을 알아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알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알아도 단지 한계만을 인식할 뿐이어서 겸허만 순종의 마음만 강화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 있죠. 아무것도 모르면 아는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지만 다 알아도 결과는 매한가지라는 것입니다. 0이나 무한이나 본질상 같은 결과이죠. 다 아는 것을 지식이라 하고 99.999.....%만 아는 것까지는 무지라고 할 때 0이 아니고 0.00000..... 1%의 지식에서 99.999.....%까지의 온전하지 못한 지식 즉 참지식이 아닌 것으로 전지함으로 만물을 만든 창조주의 지시를 그것이 자신이 부분적으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다고 거스르는 것은 범죄적인 주제넘음인 것입니다.
메타의 메타의...... 메타에 관한 지식을 온전히 가진 사람들은 피조물의 한계를 원리적으로 알고 더 자발적으로 기꺼이 창조의 법에 순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본능적인 순종심으로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과 결과는 정확히 동일합니다.
예수께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만이 왕국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 자신은 만물의 공동 창조주이죠.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지식이 많았죠. 그러므로 자신은 자의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전적으로 그분의 아버지인 창조주의 뜻과 온전히 일치한 언행을 함으로써 이점에 있어서 본을 보였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에게 기꺼이 온전히 순종하는 그처럼 그렇게 하였죠.
인간 세상은 생각이라는 면에 있어 극도로 혼란스러우며 각기 자기주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서에는 이지력을 사용하여 자발적으로 창조주를 숭배하도록 권하고 있는데 이지력 즉 이성과 지성 모두를 올바르게 사용하여 그렇게 하라는 것이죠.
인간은 두 가지 모두에 있어 사용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임의로 함부로 사용하여 거짓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메타에 관한 온전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창조주의 법에 자발적으로 더 온전히 순응함으로써 지극한 행복을 누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이지력으로 드리는 신성한 봉사입니다.”—로마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