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아
외국인 교수가 자신이 되기를 원하는 모습에 대해 영문으로 쓰라는 과제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특정한 모습으로 정형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밀가루 반죽처럼 어떤 형태로든 변신할 수 있는 상태, 물처럼 어떤 형태의 용기에도 담길 수 있는 그런 자유분방한 인격을 지니고 싶다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평가는 약한 자아의 소유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의 인격을 지니는 것은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한 것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아가 약하다는 말도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속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틀 잡히게 되죠. 나중에 그렇게 굳어져서 돌이키기가 아주 어려운 상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도 바뀌기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서글픈 현상입니다. 좋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이라면 바람직할 수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사실 대부분의 사람의 내면은 보기 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5절입니다. "더는 이전에 무지했을 때 가졌던 욕망에 의해 틀 잡히지 마십시오."
사람은 이른 시기에 어떤 욕망을 갖게 되고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자신을 틀 잡아 나가고 또 그렇게 틀 잡히죠. 인간의 욕망들이란 뻔한 것입니다. 부자가 되거나 출세하고 싶어 하죠. 어떤 특정한 면과 관련하여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갖추려고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욕망은 사실 무지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속사람이 창조주 보기에 바람직하지 못한 즉 승인받지 못한 상태로 확고히 틀 잡혀 있다면 그의 운명은 그가 그렇게 틀 잡힌 대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굳어지는 것은 무의식적 차원의 교만과 고집으로 인한 것입니다. 자신은 그런 가지관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죽으면 죽었지 바꾸지 못하겠다는 것이죠. 대부분 이런 면으로 강한(?) 자아(에고)를 지니고 있습니다. 창조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진심 어린 권고에 접해 자신이 뭔가 잘못 틀 잡혀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유연성 즉 겸손과 온유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이 혹 자아가 약하다고 평가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변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변화할 수 있는 것이죠. 이전의 악한 상태에서 탈출하여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