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자격
이기심과 탐욕으로 범죄를 획책하고 그것이 드러나서 징벌을 받게 되는 경우 슬프고 속상하고 화가 나죠. 마음에 크게 스트레스가 될 것입니다. 사법적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죠. 물론 드러나지 않고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많고 죽을 때까지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죠.
아무튼 드러나서 고난을 받을 경우 위로를 해주는 것이 합당할까요? 단지 드러나서 수치를 겪게 되는 것에 대해 언짢아하는 경우라면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요. 대부분 재수가 없어서 톨킨 것이라 생각하고 진정한 죄책감을 갖지 않죠. 그런 민감한 양심이 있었다면 애초에 탐욕에 지배되어 범죄를 획책하지 조차 않았을 것이니까요. 뻔뻔스러운 파렴치범인 경우 진정한 위로의 동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후회하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보일 경우, 큰 슬픔에 오래 빠져 있는 경우 위로가 필요할 수 있겠죠.
주된 위로의 대상은 질병이나 자연재해나 범죄를 당하여 피해를 입고 곤경에 처하게 된 경우이죠. 억울한 일을 당한 경우도요.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선악의 통일된 기준이 없죠. 성서의 표현대로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고 하는 임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 악행에 대해서도 잘했어! 잘했어! 하면서 하면서 오히려 칭찬하는 경우도 많죠. 나름으로 정권을 악한 통치권으로 규정하고 반정부시위를 하는 경우 그로 인해 사법적으로 범죄자가 되는 경우 확신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국적이나 이념이 다른 존재는 악한 존재이어서 죽여도 악행이 아니라 선행이 되지만 포로로 잡히면 죄인이 되죠.
예수나 그의 제자들은 최상의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나 당국에게는 사형에 해당하는 가장 심각한 악행을 행하는 사람들이었죠. 실제로 사형당한 사람들도 많고요. 여러모로 극심한 고난에 처하게 된 사람들이 많죠. 당연히 가장 주된 위로의 대상이 되죠.
그런데 누가 진정으로 그런 위로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지닌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 싫은 수치의 이력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몸서리쳐질 정도의 그러한 끔찍스러운 과거가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그러나 진정으로 그렇게 느낀다면 그는 그와 같은 행위를 다시 할 가능성이 없게 된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상당기간 동안 죄의 행위가 없었겠죠. 그러한 사람들이 장기간 지나친 죄책감으로 억눌려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관점에서 경우에 따라 그런 과거는 없는 것처럼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 해도 위선적이지 않을 수 있죠. 그러나 자신의 그러한 추익한 과거가 드러나서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위로라는 것을 할 수 있어 뻔뻔스럽게 말이지 하고 비난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그런 전력이 있다고 해서 떳떳하게 위로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이라면 어떤 인간이 위로라는 것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현재의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기준으로 위로할 수 있으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극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