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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결론으로

by 법칙전달자

최종결론으로


인간이 알 수 없는 문제의 답은 성서에 있습니다. 그런데 성서를 볼 때 그것이 최종결론이라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면 성서를 볼 필요가 없죠. 하느님은 오직 하나인가 혹은 셋이면서 하나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는데 물론 성서의 결론은 전자이죠. 인간영혼이 불멸인가 혹은 멸성인가 하는 문제의 답은 후자이죠. 삼위일체, 영혼불멸교리는 성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에서 나왔죠. 이교의 교리이기도 합니다. 중세기 때 사람들이 성서를 보지 못하게 한 이유도 되었죠. 기독교를 거짓종교 그리고 멸망의 일 순위로 단정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나 인간 영혼 그리고 우주나 만물의 본질에 대해서는 칸트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한 것이기도 하죠. 그런 점들에 대해서는 창조주의 언명이 진리가 되죠. 그리고 진리는 간명합니다.


전도서 3장 11정과 14절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게 만드셨다. 또 그들의 마음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두셨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참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

참하느님께서 만드시는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사람들이 그분을 두려워하도록 참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는 미가 인간의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임을 시사하죠. 만물에 깃든 아름다움은 창주주의 작품이죠. 인간의 예술품도 이에 준합니다. 어떤 음악이나 그림에는 그에 들어 있는 절대적인 미적 가치가 있죠. 물론 사람의 심미안에 따라 이를 느끼는 정도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현재 멸성이긴 하나 그 한 측면인 의식에는 영원에 대한 지향이 있죠. 죽음을 모순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죠. 하이데거는 이를 대자연의 대오류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우주나 만물의 본질을 알아내는 면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전자나 쿼크의 본질이 끈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걸 관측하려면 우리 은하게 크기만한 입자 가속기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현재는 확인하기 불가하죠. 또한 우주는 10차원 혹은 11차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력은 숨어있는 6차원에 들어 있기 때문에 다른 힘에 비해 그렇게 약하다고 하죠. 이 역시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거시세계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우리 우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많고 거의 열 가지 정도가 되는 다중 우주론이 있죠. 인간이 계속 알아내려고 하긴 하지만 그 궁극의 것은 결코 알지 못한다고 하는데 창조주가 그렇게 하였기 때문이죠.


과학자들은 약 140억 년 전에 모든 것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때 생긴 전자 하나라도 없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우주 전체를 이루고 있는 질량에서 전자 하나가 더 많거나 적었어도 우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고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관련 법칙은 정밀하다고 하죠. 질량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따라 전자 하나라도 더하거나 덜해지는 없다고 하는데 3장 14절에 묘사된 바와 같죠.


만물에 대한 이와 같은 성서의 묘사는 학자들이 밝혀낸 확립된 지식과 일치하죠.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분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 것이 당연한데 사람들은 불쾌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멸망시키고 싶을 정도이죠.


전도서의 결론이죠.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 결론은 이러하다. 참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참하느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모든 감추어진 것이 선한지 악한지 판결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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