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된다는 것의 의미
전도서는 헛되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죽는데 왜 사느냐는 말이 있죠.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존재가 영원히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치관이죠. 역사에 길이 남을 자기희생적인 업적을 남긴다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죠. 혹자는 후대 사람들에게 기림을 받지 않느냐고 하는데 사실 무의미한 말이죠.
419 기념관에 가보면 그때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묘비들이 있죠. 기리는 시도 있고요. 죽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결코 자신을 희생하면서 의롭게 살아야 하는 힘 있는 이유가 되지 못하죠.
그래도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라도 사람들에게 좋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소중하게 기억해 주는 것을 상상하면서 기분 좋아할지 모릅니다.
전도거 1장 11절입니다.
이전 사람들을 기억하는 자가 없고, 오는 세대를 기억할 자가 없으니, 그 후의 세대도 그들을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라 해도 그나마도 이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곧 죽어 없어질 사람의 머릿속에 잠깐씩 떠오르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러나 뭔가 의거나 전장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림이 있어야 경우에 따라 사람들이 기꺼이 그렇게 하여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기에 기리는 일에 많은 정성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13,4절입니다.
하늘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것을 지혜로 연구하고 탐구하려고 마음을 쏟았으니, 곧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들에게 주셔서 몰두하게 하신 괴로운 일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일을 보았는데,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쫓아다니는 것이었다.
현재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이 몰두하여 뭔가 추구하는 일들에는 괴로움이 따른다는 것이죠. 쫓아다니면서 뭔가 잡으려 하지만 많은 스트레스 가운데 잘 되지 않고 결국은 허가 되죠. 죽어 없어지는 것이죠. 부질없고 허탄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면에서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들에게 기억되는 것도 무가치하죠. 죽은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려 봐야 죽은 그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신도 곧 죽게 되죠. 솔로몬도 죽었고 제가 그가 쓴 전도서를 읽고 그 지혜에 탄복하여 그에 대한 존경심이 강하게 생긴다고 한들 그것이 솔로몬에게 무슨 의미가 있셌습니까?
그런데 전도서의 주제는 허무라는 부장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12장 6,7절입니다.
사람은 그가 오래 머물게 될 집으로 가고 ...... 그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그때에 흙은 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도 그것을 주신 참하느님께로 돌아간다.
가치 있는 기억은 창조주에 대한 것이라는 것이죠. 죽기 전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죠. 사람이 죽으면 흙이었던 몸은 해체되지만 영(여기서는 그 사람의 기억과 개성, 생명력)은 하느님께로 가게 된다는 것이죠. 학자들도 아카식레코드, 홀로그렘 이론 등으로 인간 개개인에 대한 정보가 어딘가에 기억된다고 하죠. 그것에 살을 붙여 재생하는 것은 창조주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창조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렇게 되기가 더 유리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기억하기와 기억되기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