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와 계획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대개 타인과 별 불편 없이 공유할 수 있죠. 자신이 어떤 경치를 감상하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가 동일한 경치를 감상하고 있음을 잘 알지도 못하죠. 보는 즐거움을 더 하기 위해 함께 보자고 권하기도 하죠. 음악을 듣는 것도요. 이 글도 그러하죠. 다른 사람이 이 글을 보는 것이 자신이 보는 글의 양이나 질을 떨어트리지 않죠.
숲에는 자연적으로 먹을 만한 과실이 풍요롭게 열린 나무는 찾기 힘들죠. 가을에 밤나무는 풍부한 것 같습니다. 너도 나도 한 자루씩 주어 담아 오기도 하죠. 밤 줍기도 타인들과 별 마찰 없이 공유가 이루어지죠.
그런데 둘이 함께 숲을 걷다가 진기하고 먹음직스러운 과일이 딱 하나가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죠. 그런데 둘은 서로를 사랑하여 상대가 그것을 먹는 것을 더 선호하는데 서로 그러하기 때문에 혼자 다 먹는 것보다 반으로 나누어 함께 먹는 것이 더 맛있고 행복하겠죠.
먹을 것이나 주거 공간 같은 물질적인 것은 타인과 나누면 양이 줄어들거나 질이 떨어지죠.
그러므로 그런 것의 생산과 분배에는 계획이 필요하죠. 책임을 맡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자가 더 좋은 것들을 더 우선적으로 그의 친인척들이나 지인들에게 분배한다고 할 때 오늘날과 같은 사회 풍토라면 당연히 불평이 생기겠죠. 분배의 공정한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라 엄격하게 하라고 하겠죠.
그러나 이상 사회에서는 혹 그런 일이 생겼다 해도 사람들이 그 책임자를 사랑하고 그의 친인척들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좋은 것이 많이 우선적으로 배분된다 하더라도 오히려 기뻐할 것입니다.
공유에는 유 즉 소유개념이 들어가죠. 그에는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죠. 특정 개인에게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된다는 것은 모두가 부족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양질의 것을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하죠. 양이나 수가 한정되어 있으면 자기중심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 배타적인 소유권을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경쟁하거나 싸우는 것은 그 때문이죠. 나라들 까리 싸우는 것도요. 싸워서라도, 상대를 죽여서라도 그것을 뺏으려 하는 것이죠. 사회적 다위니즘 같은 사상은 그러한 태도를 정당화하죠.
그러나 사람들이 이점과 관련해서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공유에 대상과 관련된 것인데 사람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공유의 대상이라는 것이죠. 지금 세상에 적용하기에는 비현실적이죠. 사람들은 결코 사랑스럽거나 아름답지 않으니까요. 스스로를 흉하게 만들었죠.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재롱 피우는 귀여운 동물들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죠. 그런데 사람을 만난다면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정신세계를 여행하는 것이요. 남이 없는 사회인 것이죠. 사람들은 각각이 매력적인 개성, 아름다운 인성을 지닌 존재들이라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의 대상이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공유와 사랑의 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세상의 마땅한 모습인 것이죠.
물질적인 것은 모두가 전혀 부족하지 않게 풍요롭게 갖추어져 있죠. 생산 계획에 따라 모두가 자원봉사로 참여한 노력에 따라 풍부하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죠. 모두가 동료에 대한 사랑으로, 즐거움으로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죠. 함께 행복한 교제를 나누면서요. 음악을 공유하면서요.
이 악한 세상에서는 불가능하죠. 소설로나 영화로도 그런 상황이 다루어지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마치 뭔가가 그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하게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 다행히 이 세상은 곧 끝납니다. 이미 그런 세상에서 살 자격이 있음을 증명한 적어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우선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죠.
창조주의 이러한 계획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